brunch

소개합니다 인도영화
(영화제초청작편)

한국에서 소개될 기회는 물건너 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raSpberRy

사실 일반적인 인도영화 마니아들은 영화제용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습니다.


그게 단순히 상업성이 덜하거나 아예 배제가 되어서가 비선호의 이유이지만은 않습니다. 어쩌다 2년에 한 번 선택되는 영화가 주로 이런 식이라서 나름의 박탈감(?) 같은 것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매번 영화제 등에서 관객들이 ‘이 영화엔 춤 노래가 없네요?’ 이런 의문 갖는데 지금까지 공식 루트를 거쳐 온 대부분의 영화가 그런 영화제용 영화였다는 걸 의심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아이러니에서 오는 분노와 짜증이라 해두죠 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최근 소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에도 인도영화들이 공식 초청되고 수상까지 하고 있긴 한데 의외로 우리나라엔 소개되고 있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개중에는 한국인 프로듀서가 참여한 영화도 있습니다.


다른 영화에는 관대하다가도 인도영화에는 까다로워지는 모양인지 지금 소개하는 영화들은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 소개되지 않았고 이제 외국영화를 초청하는 영화제들도 끝나는 마당이라 기약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 해외 영화제에서 선방했던 인도영화들을 소개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1537c7eed59d51dfb1ab6ef3830d3aeb7f93ff1f2bea32cef912f97b2ec60c5d.jpg

Viduthalai: Part I & II (로테르담 영화제 초청)


권력의 난폭한 행태를 날카롭게 묘사하다 - scroll.in
긴장감 넘치는 순간으로 시청자의 몰입도를 높인다 - Times of India


Synopsis

1987년 열차 사고의 주범이 분리주의자임이 밝혀지면서 경찰 내부에서 이들을 소탕하기 위한 팀을 조직한다. 이 팀에 들어간 신입경찰 쿠마레산은 과도하게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들의 실태를 목도하고 한 편 평범한 교사였던 페루말은 지주의 모함에 의해 가족을 잃고 반정부 조직을 결성하는 리더로 거듭난다.



인도는 반정부, 반카스트를 외치며 분리주의를 시도하는 집단들이 존재하는데요, 대표적으로 카슈미르 무슬림 분리주의자나 무장 공산진영인 낙살라이트 같은 이들이 있습니다. 영화 《Viduthalai》 연작 역시 이런 분리주의자들과 특수부대 요원 간의 이야기를 거칠고 심층적으로 다룬 영화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감독인 베트리마란은 베니스 오리종티 부분 초청작이기도 한 *《취조》 같은 문제작을 주로 만드는 감독인데 이 영화 《Viduthalai》 역시 공권력과 테러 집단이 보여주는 날것 그대로의 폭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viduthalai2.jpg


작년 중국과 대만 등지에서도 슬리퍼 히트를 기록했던 (하지만 우리나라엔 애매하게 소개된) 《Maharaja》의 주연을 맡은 연기파 배우 비제이 세투파티가 분리주의 조직의 리더인 페루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고 베트리마란 감독은 어두운 주제를 직설적으로 그리는 감독임에도 상업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도 그가 프로듀서를 맡은 《행복까지 30일》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이 영화가 이 감독 참여작 치고 순한맛)


늘 화제를 몰고다니는 감독의 작품답게 인도를 대표하는 Filmfare 등의 시상식에서 다수의 부문에 올랐지만 비평가가 선정한 작품상을 받는 데 그쳤습니다.

* 넷플릭스 서비스작(9/30현재)



MV5BZjE4M2Y0YmYtZWVmMi00NjA2LThhODAtZWI0NDdiOWUxOWE5XkEyXkFqcGc@._V1_FMjpg_UX1000_.jpg

Sister Midnight (칸 영화제 감독주간)

엉뚱하고 폭력적인 반전이 펼쳐지지만, 항상 놀라울 정도로 화려한 미학이 이를 뒷받침한다 - LA Times
어둡고 재밌는 매력이 있다 - Indian Express


Synopsis

중매 결혼 이후 남편과 함께 시골 마을에서 도시인 뭄바이로 올라온 우마, 빈민가에서 비겁하고 이기적인 남편과의 결혼 생활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결혼 생활의 파탄을 받아들이지 않은 우마는 충동에 자유로이 굴복하고, 밤이 되면 흉측하고 불안한 모습으로 변한다…



SISTER-MIDNIGHT-2.jpg

감독이자 각본가인 카란 칸다리가 10년 만에 완성했다고 하는 이 영화는 대사에 의존하기보다는 시각적인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영화라고 하는데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에 대한 기괴한 찬가로 이야기됩니다.


주인공인 우마 역은 라디카 압테라는 배우가 맡고 있는데요, 《블라인드 멜로디》나 넷플릭스 드라마 ‘신성한 게임’처럼 독창적인 작품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에서도 실험적이고 과감한 연기를 보여주어 찬사를 받았습니다.


카란 칸다리 감독도 밝혔지만 아마도 기괴하고 과격한 행동은 존 워터스 감독의 《Pink Flamingos》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파격을 시도한 이 영화는 제78회 영국 BAFTA에서 영국작가 데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MV5BYzdkY2NiZGItYzBiZS00NGZmLWEzY2QtYmFmZTdlMmUwY2QwXkEyXkFqcGc@._V1_FMjpg_UX1000_.jpg

Jugnuma: The Fable (베를린 영화제)


평범한 일상에 마법적 사실주의적 터치 - Indian Express
메시지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강렬하다 - The Wire


Synopsis

인도 히말라야에서 가족들과 함께 과수원을 운영하는 데브, 불에 탄 사과나무 한 그루를 발견한 이후로 계속 똑같은 사고를 마주한다. 범인을 찾기도 전에 과수원 전체가 불타버리고 범인을 찾기 위해 데브는 무장 폭력에 의존한다.



202409890_1_RWD_1920.jpg


《11일간의 장례식(Thithi)》라는 영화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두 개의 황금표범상을 수상한 람 레디라는 감독의 15년만의 작품으로 《11일간의 장례식》은 한때 넷플릭스에도 소개되었던 작품입니다. 더구나 한국계인 박선민이라는 분이 제작했지만 그 영화도 그렇고 이영화도 한국의 그 어떤 영화제에도 소개되지 못했습니다.


15년 만에 돌아온 그는 뉴욕 현대미술관이 주목한 감독 답게 미학적인 시도를 했는데요, ‘마술적 사실주의’적인 색채와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89년의 공기를 담고자 16mm 필름 촬영으로 특유의 질감과 몰입감을 담으로 했다고 합니다.


주인공인 데브 역은 《와시푸르의 갱들》같은 작가주의 영화에서 사랑받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드라마 ‘패밀리맨’으로 대중적인 작품으로도 함께 인정받은 배우 마노즈 바즈파이가 맡았습니다.



MV5BODQ0NzIwM2YtY2I3YS00YWQ1LWJjZmYtMGM5YmMyZDlhNWUyXkEyXkFqcGc@._V1_FMjpg_UY1600_.jpg

Homebound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영화가 사회를 변화시키지까진 않더라도 논의의 시작이 될 수 있다면 - Filmfare
서양인에 맞추지 않은 인도인의 시선을 다룬 영화 - Guardian


Synopsis

북인도의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두 친구, 차별받으면서 살아온 그들은 경찰이 되면 사람들이 자신들을 존중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경찰 시험을 준비한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 놓이면서 둘의 우정은 시험대에 놓인다.



영화《Homebound》는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된 《마사안》이라는 놀라운 데뷔작을 들고 왔던 니라즈 가이완 감독이 10년만에 완성한 장편으로 또다시 같은 부문인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습니다.


Homebound.jpg


니콜 키드먼 등 호화 캐스팅이 돋보였던 수잔 비에르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퍼펙트 커플’ 등에서 활약한 이샨 카타르와 여성 조종사로 카르길 전투의 영웅이 된 군잔 삭세나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영화 《군잔 삭세나》로 호평받은 잔비 카푸르 등 발리우드 스타들이 출연해 열연을 펼친 이 영화는 감동적인 클라이맥스에 힘입어 칸에서 9분간의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9월에 열린 토론토 영화제 관객상 부문에서는 《어쩔수가없다》와 《센티멘탈 밸류》에 이어 세 번째로 이름을 올려 명실상부한 영화제 화제작으로 주목받았는데요, 작년 인도 아카데미 선정위원회가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을 스넙시킨 것에 대해 눈치가 보였는지 《Homebound》는 이변 없이 2026년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인도 대표에 올랐습니다… 만 안타깝게 인도 등급위원회 CBFC는 카스트에 비판적인 77초 분량의 대사를 삭제할 것을 명령했고 인도에는 삭제된 버전으로 공개되었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집니다.



sabar.jpg

Sabar Bonda (선댄스 영화제)


사려 깊은 연출과 간결한 스토리텔링 - Hollywood Reporter
감정의 안개로 만들어낸 담요같은 영화 - Variety


Synopsis

대도시 뭄바이에서 콜센터 직원으로 살아가던 동성애자인 아난드는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시골로 내려간다. 열흘 동안의 애도기간 동안 어린 시절의 친구 발야를 만나 또 다시 애틋한 감정에 젖어든다.


로한 파라슈람 카나와데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2016년 그가 처음으로 단편영화를 내놓았을 당시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주인공 아난드처럼 고향에서 장례를 치렀는데요, 당시 시골의 보수적인 가족으로부터 결혼과 미래에 대한 압박을 받을 무렵 발야 같은 친구가 도피처가 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에서 쓴 게 지금의 각본이 되었다고 합니다.



sabar02.jpg

‘대도시의 사랑법’같은 제목의 작품이 있듯 많은 퀴어영화들이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한 편, 카나와데 감독은 시골 지역의 의식과 인물들을 활용함으로써, 이야기를 뿌리내릴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영화는 스코어를 넣거나 격렬한 사랑대신 시골의 바람소리와 일상에서 스쳐가는 교감으로 두 사람의 감정표현을 대신했다고 하는데요


공개 이후 로튼토마토 신선도 95%를 유지하며 2025년 선댄스 영화제 월드시네마 드라마부문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인도에선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인기를 모은 인도영화 《바후발리》의 악역 발랄라데바를 맡았던 라나 다구바티가 작년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에 이어 자신의 배급망을 통해 이 영화를 소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trees.jpg

Songs of Forgotten Trees (베니스 오리종티)


놀라운 감정적 힘을 지닌 독립 영화 데뷔작 - Observer
여성이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것을 괴로운 눈으로 그린 초상화 - Hollywood Reporter


Synopsis

뭄바이에서 배우를 꿈꾸지만 생계를 위해 성매매를 하는 투야는 룸메이트로 콜센터 직원인 스웨타를 맞이한다. 차갑고 삭막한 도시 뭄바이에서 둘은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면서 유대감을 형성해 나간다.


올 해는 여성 감독들의 약진이 있었는데 운좋게 로테르담 초청작인 바르샤 바라트의 《배드걸》은 여성인권영화제에 소개되었고 아누파르나 로이의 데뷔작은 오리종티 감독상을 수상하면서(둘 다 아누락 카쉬아프라는 거물의 지원이 있었다) 과거 작품상을 수상했던 차이탄야 탐하네 감독의 《법정》에 이어 오리종티 부문에서 간만에 큰 상을 수상한 인도영화가 되었습니다.


trees02.jpg

아누파르나 로이 같은 경우 독특한 길을 걸었는데요, 영화 속 주인공인 스웨타처럼 콜센터 일을 하면서 언젠가 자신이 만드는 영화를 세상에 내놓고 싶어하는 인물이었고 전문 영화 학교가 아닌 순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했는데, 이 점이 유사한 출발을 했던 아누락 카쉬아프의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Songs of Forgotten Trees》는 철저하게 게릴라 식으로 촬영한 영화라 주요 공간인 두 사람의 집도 사실 아누파르나 감독의 집에서 촬영했다고 하는데 성노동자 이야기를 촬영한다는 걸 알게 된 집주인이 강제 퇴거를 명령하고 이 이야기를 각색해 또 영화에 담음으로서 진정한 영화의 결말을 낸 것도 흥미로운 과정이었다고 하네요. 감독에겐 이런 아픔이 있었지만 어쩌면 투박할 수도 있는 이 데뷔작으로 큰 영예를 얻었습니다.


여성과의 연대를 다룬다는 점에서 많은이들로부터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과의 비교가 많이 나왔지만 영화학도였던 파얄 카파디아와 비교해 아누파르나의 작품은 다소 투박하다는 얘기가 많긴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작품이 나왔을지 궁금하긴 하네요.




사실 이건 시작에 불과하고요 추석 기간동안에는 제가 (그리고 인도영화 팬들이) 보고 싶어했던 메인스트림 영화들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반 극장은 텐트폴 영화와 재개봉의 홍수, 영화제같은 공식 플랫폼도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까다로운 과정이 있고 기수입 인기작들에게 스포트라이트 쏠리는 한편으로 이런 영화도 있다고 언급하는 사람이 있.었.다. 정도로 소명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도 최초 여성 슈퍼히어로 《Lokah》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