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들어서 직접 찾아갔습니다
지난 번에 브런치에 이젠 한국에 기회가 없는듯한 2025년의 인도영화 화제작 소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올 해는 한가위 징검다리 연휴가 생기기도 했고 한 편으로 그냥 이대로 기회를 흘려 보내야 하나 하고 생각하니 좀 억울하기도 해서 무리해서 인도여행을 기획했습니다.
https://brunch.co.kr/@52659e43026b40b/21
https://brunch.co.kr/@52659e43026b40b/22
그런데 집에는 이미 작년에 인도를 갔기 때문에 올 해는 방콕간다고 하고(그래도 사실임. 방콕 갔음) 몇 시간 안에 방콕에서 인도로 떠나는 플랜을 짰습니다. 인근 국가인 캄보디아와 관련한 한국인들의 위험 노출 때문에 불안해하셔서 평소와는 달리 매일매일 집에 보고를 해야 했습니다만…
'발리우드'라는 단어도 있고 인도여행때마다 ‘제2의 고향’, ‘바다낀 도시가 좋다’ 이런 소리 했는데 올 해의 거지같은 경험으로 박탈조치 시켰습니다. 인도는 여행할 때 비자가 있어야 하는 나라인데, 여행하시는 분들 대부분은 사전 신청을 하고 오지만 저는 영문으로 폼 쓰는 것도 어렵고(심지어 대사관에서 돈도 먹힘) 그냥 도착비자가 편해서 첫 여행부터 도착비자로 방문하는데요, 한국에서 인도 여행오는 사람이 적은건지 다들 사전 신청하고 오는건지 첫 여행을 제외하곤 도착비자 부스가 한산~ 함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큰 마찰 없이 입국했는데 … 뭄바이 in은 처음인데 느낌이 거지같네요. 폼을 작성하는 것 외에 진짜 관광이 맞냐,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 등등을 물어보며 제 회사 번호도 적어갔습니다. 그리고 나선 확인이 필요하다며 출입국 관리소 앞에 저를 꿔다논 보리자루처럼 방치하더니… 일을 보는 게 아니라 무슨 월례조회같은데 붙어있는 겁니다. (지금 뭐하는 거이묘?) 그거 끝나고 아까 출입국 심사하던 직원과는 다른 직원이 도착비자비 2천 루피 ‘현금’을 달라기에 무슨소리냐 난 지금까지 카드로 결제했다 하니까. 카드를 안 받는다길래 ATM 기계에서 현금을 뽑고… 이렇게 한 시간 남짓을 지체했네요. 떼잉…
(다른 분들 여행 후기 보니까 뭄바이 공항에서의 도착비자 절차가 정말 형편 없는 것 같군요. 다른 나라는 무비자에 간소화 되는데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다음번에 소개하겠지만 현재 인도는 스마트페이를 통한 결제를 본격적으로 실시중입니다. 길거리에서 바나나 파는 상인도 자기의 고유 QR코드를 걸어놓고 이곳으로 결제를 하게 유도하는데 이걸 UPI 결제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Unified Payments Interface의 줄임말이고 인도는 인도 비거주 인도인들도 많기 때문에 결국 인도에 계좌가 없는 이들을 위한 시스템도 개발되었고요, 저 역시 그걸 뚫어서 인도여행을 했는데 이 승인 절차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고 뭄바이에 있는 한 저렴한 호스텔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답니다.
새벽녘에 뭄바이를 뒤로한 채 코치라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말라얄람어를 쓰는 케랄라의 대표적인 도시로 2024년 인도여행때 처음 방문했는데 느낌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저도 그렇고 인도 내부에서도 말라얄람어 영화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쪽의 시장은 급부상하게 됩니다.
방콕에서 이틀 연속으로 쭉 입고 있던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씻고싶은 욕망을 꾹꾹 눌러담으면서 도착한 코치 공항. 코치에서 메트로 라인의 종점인 알루바(Aluva) 역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논리적으로 공항에 설 것이 분명한데 구글 지도에선 공항 외곽에 정류장이 있다고 표시되어서 조금 헤맸다가 다시 제대로 공항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알루바 역으로 향했습니다.
희소식이 있다면 뭄바이에서 Mony라는 앱이 승인이 되어서 이제 나도 UPI 결제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메트로 티켓 판매기가 현금은 안 되고 UPI 결제만 되게 되어 있어서 현금 가지고 다니는 게 얼마나 싫었는데 이 점은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약한 숙소로 지금 가봐야 체크인이 안 되니 제가 먼저 향한 곳은 극장입니다. 마침 UPI를 통한 영화 예매가 성공했거든요. 첫 영화로 그렇게 보고싶던 《Lokah - chaper 1: Chandra》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는 스웨덴에서 인도 카르나카타로 온 찬드라라는 초능력을 지닌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한 편, 그녀의 이웃집에 사는 써니는 학교를 중퇴하고 친구들과 파티를 하며 하릴없이 살아가던 중 교통사고가 날 뻔한 걸 찬드라에 의해 구조되고 이를 계기로 조금은 위험해보이는 찬드라와 친해지려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카르나카타에서 활동중인 장기밀매조직과 사실상 그들의 리더인 경찰 고다와 맞딱드리게 되면서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스릴과 액션이 펼쳐집니다.
말라얄람어 영화지만 칸나다어를 쓰는 카르나카타와 타밀어를 쓰는 타밀인도 영화에 등장하고 있어서 이들의 언어가 나올 때면 마치 《맨 온 파이어》같은 영화처럼 화면에 큰 말라얄람어 대사들이 등장하는 게 감각적으로 보이더라고요.
케랄라 지역을 기반으로 한 말라얄람어권에서 탄생한 이 슈퍼히어로 영화는 낮은 예산으로 만든 대신에 전도 유망한 젊은 스타들과 점점 쌓아가며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이야기로 케랄라 지역 뿐 아니라 인도 전역에서 전반적으로 호평을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인도의 정령인 ‘야크샤(Yaksha) 설화’를 바탕으로 밤에만 활동하는 흡혈귀 주인공의 활약을 보여주었는데요, 찬드라가 몇 백 년 전 어린 소녀인 릴리였던 때를 보여주는 챕터에선 약간 모험영화 질감을 표현하고 있어 《바후발리》같은 영화가 인도 영화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인도영화 잘 모르는 분들이 보셔도 꽤 괜찮게 보실 수 있는 구석이 많은 영화였고요. 결국 뜨거운 반응속에 흥행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국내에 소개될 가능성은 모르겠지만 혹시 소개되면 그땐 다시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ㅋ
영화 《Homebound》는 실제 인도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룬 기사를 니라즈 가이완 감독이 판권을 구매해 각색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미시적으로는 두 친구의 우정을 그리고 있고 거시적으로는 인도의 두 차별받는 계층, 무슬림과 불가촉 천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이 영화를 보시게 될 분들을 위해서 정보를 최소화 하고 싶습니다. 영화 클라이맥스부터 결말까지 한 20분동안 제 뒤에 앉으신 분께서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 펑펑 우시더라고요.
그 관객은 그 관객이고 제 이야기를 해 보자면 우리나라는 종교 갈등도 카스트도 없는데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저를 납득시켰다는 건 영화가 그만큼의 설득력을 갖췄다는 뜻이겠죠
넷플릭스 영화였던 《AK vs. AK》에서 비슷한 대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인도영화에 영화제 마크가 있으면 영화 망한다고, 물론 이 영화 《Homebound》를 제작-배급한 카란 조하르가 이미 2012년에 《런치박스》라는 영화로 그런 고정관념을 깬 선례를 만들기도 했었고 불법 다운로드에서 OTT 시대까지 인도에는 개봉되지 않는 다양한 언어와 아트영화들을 받아들이면서 멀티플렉스의 발달로 여피족 스타일의 도시 시네필들이 또다른 소비 계층으로 대두되면서 비록 예술영화 전용관 같은 개념은 없지만 이런 류의 영화를 소비해는 계층이 어느정도 가시화는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흐름 속에 개봉된 영화 《Homebound》는 제가 관람하던 시간대가 평일 낮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점유율이 나쁘지 않게 나와서 이런 ‘영화제용 영화’도 소비 계층이 점점 두터워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를 받았는데요, 한 편으로는 칸 영화제 초청작이기는 했지만 제 기준으로는 잘만든 상업영화 드라마였고요, 제 기준으로 영화제용 예술영화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이나 사트야지트 레이의 ‘아푸 삼부작’ 정도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므로 오해 ㄴㄴ)
추천하는 영화이고 다음 주엔 홍콩에도 개봉되는데 우리나라엔 만약 소개될 수 있다면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런 얘기 좀 영향력 있는 사람이 해주라…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