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년의 삶

죽지 않고 살아있어도 추앙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추앙받는 것 생각보다 어렵다.

by 달빛소년
죽음 불평등

100세까지 살 수 있는 시대에 죽음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 준 주말


사람은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다. 살아 있음이 짐이 되는 사람과 죽어서 까지 명예로운 사람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본다. 100세까지 살 수 있는 시대에 나는 인생을 아름다운 생애로 기록하고 있을지 걱정스러워졌다.


어떤 이의 죽음은 명예로우며, 어떤 이는 100세 가까이 살아있지만 주변에서 생에 대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고 믿고 있는 죽음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현실을 마주해서 인지 죽음을 대하는 주변의 다른 반응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공자는 효에 대해서 부모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행위라고 하였으며 부모와 자녀 간의 도덕이자 기초이며 국가에 이르기까지 최우선의 가르침으로 여겼다. 부모에 대한 효를 실천하느라 재산을 모두 써버리고 자녀에게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분이 계신다.


그것을 과연 효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제 곧 100세로 그분이 살아 있음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지만 여전히 정정하시다. 죽어도 슬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혼자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와 별반 다를 바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덕적으로 너무 나쁘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제3자의 시선에서 보는 것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40대가 은퇴하는 세상에 스스로 생존하지 못하는 부모가 80세까지 삶을 영위한다면 자녀의 나이는 이미 60에 가까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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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sMQiL_2v4vs

땅속 깊이 뿌리내린 오래된 나무처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가치 있는 삶이 되고 싶다.


주말에는 가급적 외부와 소통하지 않으려고 전화와 문자를 잘 확인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돌보고 있었는데 우연히 평소라면 확인하지 않았을 메시지를 봤다. 억만장자에 사회에 기여도가 상당히 높은 분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기여하고 업적을 남긴 고인에 대해 추앙하며 추모한다. 사소한 일부터 당연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그분의 철학과 세상의 이치 하나까지 삶의 발자취를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분의 생애에 경이로움을 표하며 하나하나 읽어가며 추모의 글을 남겼고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갔던 사람에 대한 존경의 의미일지,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짧았을 세상에 이름을 남긴 사람에 대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지만 좋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계기가 되었다.

살아 있음이 기쁘지 않음과 죽어서도 명예를 남기는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인간스럽다'는 것에 주목하고자 한다. 모든 사람은 결국엔 태어나고 죽기에 살아가면서 인격이라는 것을 고민해봐야 한다.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는 돈을 따라 길을 찾아가기도 하며 나를 포함한 대다수가 이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자신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아름답고 고단한 일이다. 함께 사는 사회에 혼자만 잘 살려고 하는 것은 옳은 일인지, 세상에서는 본인에게 이득이 된다고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을 서슴지 않는 일이 상당히 많다.

우리의 삶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살기 위해 동기를 부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꾸준히 생각한다면 자연스럽게 마지막에 이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끔 나도 어떤 일이 생기면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자포자기하기도 하는데, 그럴수록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주위 환경을 원망하는 것은 불행하게 보내는 지름길이며 올바르게 살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때때로 올바르게 살지 못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늦은 새벽 경로를 이탈하지 않으려고 반성하기도 한다.


내가 한 일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르며 발자취를 남긴다. 세상을 이롭게 만든 위인들은 저 마다 세상에 기여를 하고 돈 앞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릇에 물을 가득 채우려면 그릇을 키워야 하는데 그릇을 키우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릇이 커졌는지 작은지 판단할 기준도 없을뿐더러 물이 넘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원하는 길, 가고자 하는 길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부자이자 경제적 자유 일 것이며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유토피아 일 수 있다.

행복은 개개인이 거대한 사회를 이끄는 아름다운 모습에서 오지 않았을까 싶지만 인생은 불꽃처럼 꺼질 수밖에 없고 스스로를 태우는 불꽃이 되고자 하는 의지는 거친 파도와 같은 삶의 악재와 유혹에 쉽게 꺼진다. 요즘 들어 그릇이 큰 사람을 찾기 어려워졌다. 경제 발전 시기를 지나 잘살게 된 시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어려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남은 인생의 목표는 무엇일까?


목표와 성취하고자 하는 계획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산 것 같지만 설레는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는 상상을 해보고 싶다. 인생은 장거리의 마라톤 경기이며 사회의 발전을 둔 희생과 봉사 정신은 좋은 죽음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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