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빠진 ‘아는 사람’들의 세계

그렇게 치면 나도 아는 사람 많아!!!

by 달빛소년

대화에 당신이 빠지지 않았나요?


서로 대화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정보는 너무 많고 주어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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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요?


그건 아마도 서로의 대화에 내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만 빠지면 되는데 나와 상대방이 모두 빠진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하죠.


실제 커뮤니티에서 보는 재미있는 썰 들을 직접 풀어놓은 연극이나 드라마를 촬영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때도 있어요.


그만큼 꾸며서 한 게 뻔히 보이는 말이에요. 자연스럽지 않아요.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자아’를 삭제하고 있다고 말이죠. 스스로 흔적을 지우고 타인의 삶을 동경하는 것이죠.


그것이 아니면 무리를 해서 행복을 SNS에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최대한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올리고 ♥ 다른 사람이 하트를 눌러주길 기다리죠.


어떻게 보면 자신을 상실하고 있는 시대에 사는 걸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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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스스로에 대해 실망했을까요?


마음만 먹으면 쉽게 내 주변 사람이 무엇을 입고 먹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 알 수 있는 사회에서 비교하다 보면 초라해지죠.


예전에는 나를 중심으로 이야기했다면 최근에는 내가 빠진 ‘내 주변 누가’의 이야기하는 경향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빽이라고 하거나 든든한 뒷배라고 했죠. 너무 올드한 단어인가요? 그 사람을 아는 것을 밝히는 것으로 이득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누구와 친하게 지내고 알아줘서 학연, 지연, 혈연의 연고주의를 넘어서 SNS 등의 미디어에 팔로워들이 많아져서인지 내가 아는 사람이 ~무엇 무엇을 한다 등의 말들을 많이 합니다.


SNS에서 직접 몇백만원짜리 숙소, 여행지 등을 세세하게 영상으로 설명해주니 직접 가지 않아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이며 누가 검증할 것도 아니니 그냥 있는 척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요즘 친구들은 ‘내주변도르’라고 합니다.


그들의 단골 멘트는 “ 내 주변에, 우리 동네에, 내가 아는 사람 중에... “ 등의 ‘내’가 빠진 이야기를 합니다.


‘더 글로리’로 시작된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과 학교폭력 가해자가 유명해지고 피해자의 폭로에 사회적 논란이 발생하여 여기저기서 폭로하고 있죠. 그중 정순신 아들은 검사 아빠 정순신과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시사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정도로 아직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점점 사회가 내가 스스로 하는 일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생각입니다.


타인의 명예, 권력, 돈으로 세상을 노리는 자본주의 마지막 종착지라고 볼 수 있죠.


우리 사회는 성장 과정에서 학폭이나 왕따에 대해 여러 경로로 접합니다. 직접적, 간접적인 경로로 진행되죠. 그런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사회로 진출해서 어엿한 성인 행세를 할 수 있을 리 없잖아요? 그만큼 우리 주변에는 피해자들이 많다는 의미죠.


아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좋죠. “내가 아는 사람이” 나를 위해 애써준다면 그 역시 감사함이죠.


근데,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아는 사람이 많다는 식으로 위세를 떨고 돈 많은 사람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태도는 곤란하죠. 부모는 자녀한테 절대로 돈의 힘, 권력의 힘을 이용해서 사회를 살아가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웃긴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오랜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내 주변 지인은 재산이 현금으로 10억이더라 하고 말하면 내 주변은 100억인데 하면서 초등학생의 경쟁 심리와 같이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말을 합니다. 마치, 그 사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무기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틈만 나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고민했는데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지금 과도하게 기술에 신체와 정신을 맡기고 살고 있어요. 스마트폰, 노트북 등의 최신 전자기기로 SNS에 언제든지 접할 수 있어요. 온라인 세계에 과몰입해서 온라인 속의 사람과 온라인 속의 사람을 비교하여 현실 세계와 연결 짓고 자아가 흐릿해지는 상태에 도달합니다. 결국 그 끝은 초라함과 공허함이 남죠.

근데 그게 다 욕심 같아요.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과 능력 그리고 사회적 위치를 평가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거든요. 그래서 평균을 찾아 헤매고 평균보다 떨어진다면 울상을 짓죠.


정체성이 없는 상태에요. 어떤 그룹에서도 끊임없이 그룹 안에서 비교하죠. 회사도 성과를 회사 안에서 비교하잖아요.


평균을 안다는 것은 때론 목표를 정하고 달리기에 도움이 되기에 적당한 기대치를 정하는 데 도움은 됩니다. 그리고, 평균을 넘긴 사람은 자부심이나 우월한 감정을 느껴요.


반대로 평균을 못 넘긴 사람은 우울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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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주변도르 상’


안전하기 위해 대중을 따르고 평균을 고집합니다.

한 달에 250만원을 버는 일은 어려운 일이며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합니다.


하루에 8시간을 일해야 할지도 모르죠. 지속적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현실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부정적인 감정과 자아의 흔들림, 불안함을 느낍니다. 그런 노력은 무시하는 겁니다.


자본주의의 끝은 소비죠.


소비에 따른 계층의 분류는 집단을 지배하는 가치로 남아 있습니다. 점점 더 물질적인 성공에 기대고 있죠. 길을 돌아다니다 보면 벤츠, BMW, 아우디 등의 외제 차가 너무 흔합니다.


물질적인 성공에 집착하면 스스로 자아를 발견하고 유지하는 것이 어렵죠. 친구가 열심히 살아서 몸 값을 1억을 찍어 외제 차를 사면 “축하해” 하면 될 일을 “내 주변에는 람보르기니 타고 다니더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현상은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과도한 업무의 스트레스와 번 아웃으로 발생하는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있어야. 자아를 돌보고 다듬죠. 일에 몰두하게 되면 퇴근하고 일하고 집에 와서 씻고 스마트폰 좀 하다가 다시 자고 일하는 현상의 반복입니다. 우리 뇌는 지루함을 덜 느끼고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 반복적인 일의 정보는 굉장히 단순하게 처리합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비교를 통한 우울증, 불안, 스트레스 등의 정신 건강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면서 또다시 소비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잠이 잘 오는 약, 과도한 정신 상담 센터, 힐링 프로그램 등 잠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소에서 벗어나지만 안 보이면 누구나 편안해지죠.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더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중요한 건 너와 내가 함께하는 대화가 좋은 관계를 유지해준다는 사실이며, 평균에 의존하는 것은 전 세계 70억 인구 중 한 명인 당신의 성장과 발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P.S 현대 사회에서 나로 살아가는 일은 언제 가능한 일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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