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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소년 Nov 03. 2023

호칭에 민감한 사회, 어떻게 불러드려야 할까요?

[불편한 것도, 싫은 것도 참 많은 사회]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 앉아. 그냥 눕던가.  



상대방을 놀리거나 깔보고 무시하는 호칭은 사회적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불렀을 때 10명 중에서 2명이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사회성이 좋은 사람들은 부르지 않는다. 호칭처럼 사소한 문제로 누군가와 불편하게 지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호칭에 불편한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가까이 지내고 싶지도 않다. 


호칭 가지고 급발진하는 사람과 지내는 것은 상당히 피곤하기 때문이다. 호칭은 내가 부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부르는 것인데 고기를 구워주는 집에서 이모님이 고기를 구워 주다가 “ 학생은 어쩌면 그렇게 예쁘게 먹어!?” 했다가 학생 아니라고 발끈해서 분위기를 박살 낼 수 있다. 별 일 아닌 것으로 예민하게 구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예전부터 자주 불렀던 호칭 자체도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꽤 많다. 결혼을 다들 늦게 하지만 본인이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줌마’라는 호칭을 쓰면 화나고 기분 나쁘다고 지하철에서 칼부림까지 난다. 또, 고깃집에서 ‘아가씨’라고 불렀다고 발끈했다는 아르바이트생의 이야기를 듣는다. 뭐 주변에서 결혼하지 않는 여자들은 이모라고 불리는 것을 나이 들어 보인다고 싫어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서 아이가 있는 입장에서는 좀 곤란하다.


아이들에게 이모한테 인사해!? 말보다 누나에게 인사해!? 이렇게 말해야 하나? 생각만 해도 불편하다. 직업도 다양해져서 미용실, 네일숍, 마사지샵, 메이크업샵 등 여러 종류의 미용 관련 가게도 많다. 이런 곳에서도 호칭 논란이 알게 모르게 있다.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기분 나쁘다고 싫은 티를 내면서 원장님이라고 불러 달라는 경우도 있다. 


손님에게 기본적으로 불편한 소리를 하는 가게는 다시 방문하고 싶지 안 지다. 예민한 사람에게 “뭐, 그런 걸로 불편하게 하세요?”라고 말을 이어봤자 “옳거니, 너 오늘 잘 만났다” 하면서 갈등이 시작될 수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아줌마, 아가씨, 총각 등의 호칭도 아무 문제없다고 답변했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불편해한다. 

사회가 이러다 보니 같은 호칭도 듣는 사람에 따라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경향이 느껴져 안전하게 부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선생님’, ‘저기요’, ‘OO님’ 이렇게 부르면 거리감은 들지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갑자기 호칭 없이 소리 내서 용건만 말하는 것은 또 더 무례하다고 하겠지?


[사람들이 호칭에 불편한 이유]

이런 현상을 언어의 파편화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잘 모르겠고 그냥 인식의 변화라 말하고 싶다. 인터넷의 발달로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SNS, 유튜브 등의 사진과 동영상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있고 호칭에 대한 귀함과 천함을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많이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려고 하니 호칭에 대해서 굉장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하늘 같은 높은 교권을 가져서 선생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던 시기에 참 선생님이란 직업이 인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교권이 낮아져서 선생님이 극한 직업이라고 하는 것처럼 사회가 변하면서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다양한 매체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형태의 언어는 언어가 파편으로 쪼개져 예전에 썼던 ‘당신’이라는 호칭이 시비를 거는 호칭처럼 보이는 이유도 전통적인 언어 사용에 대한 인식이 변화다. 뭐, 교통사고가 난 상황에서 ‘당신이 끼어들었잖아!?’ ‘뭐!? 당신? 언제 봤다고 당신이야’ 하면서 언성을 높이는 상황이 그려진다. 요즘은 시비걸 때 저기요를 쓰는 듯 하다.


집단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증가하는 사회로 나아가면서 개인의 권리와 개성이 강조되면서, 개인은 존중받아야 하기에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호칭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백수’를 ‘취업준비생’이라고 불러야 한다. 뭐, 본인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어떻게 불러주길 바라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호칭에 불편하게 구는 것을 보면 난감하다. 


설명도 없고 맥락도 없이 그저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어. 내 마음이 중요해. 이런 사회 풍조가 결국 근본 없는 이해를 바라는 경우까지 도달했다. 나이 많다고 반말하고 막대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호칭 하나에 민감한 사람도 정상적인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뭐, 이것저것 다 불편하니 결국 대화를 할 수 없고 교감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P.S. 자존감 높은 사람은 호칭이고 뭐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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