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삶이 내게 묻는다.]
오늘 하루도 의미 없는 보고서를 몇 번이나 고쳤다. 그 자리에 어떻게 올라갔는지 모르겠는 부서장은 왜 그런지 모를 이유로 매번 수정을 요구했다. 처음부터 다시 작성한 문서는 결국 회의 때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는지 마는지 알 수 없는 속도로 음식을 입에 밀어 넣었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일을 하지만 지루함과 식상함은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다.
오후 회의는 끝이 없었고, 회의가 끝나고 자리에 돌아와서는 처리하지 못한 업무들이 밀려있었다. 회의도 별로 도움 되지 않았다. 그저, 더 높은 직급을 달고 있는 사람이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할 뿐이다. 집까지 일을 가져간다. 퇴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초췌한 얼굴을 보며, 나는 다시 생각한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돌이켜 보면 이 고민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일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진 시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근본적 질문 앞에서 방황한다. 심리학적으로 우리가 일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자기 성장 욕구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고 싶어 한다.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에 따르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그다음엔 자아실현의 욕구가 솟아오른다. 일은 내 역량을 키우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무대다. 비록 지금 하는 업무가 사소할지라도, 조금씩 업무를 개선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자기를 성장시키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둘째, 사회적 소속감을 얻기 위해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혼자일 때 불안한 감정을 느낀다.
회사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나도 이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감각을 준다. 함께 일하고, 성과를 내고, 인정받는 과정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얻는다. 간혹 힘들고 무력감이 들더라도, 동료들과의 협업 속에서 ‘우리’라는 소속감은 작은 위안을 준다.
셋째, 삶의 통제감을 얻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확실한 상황을 두려워하고, 내 삶이 내 통제 아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회사 일은 목표가 명확하고 성취의 기준이 분명하기 때문에, 성취감을 통해 삶에 대한 통제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때론 이 성취감이 희미해지고, 통제감도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의미를 찾으려 몸부림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끔씩 무력해지고 회의감에 빠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큰 의미를 찾아 헤매는 대신, 작은 위로와 성취에서 위안을 얻는 것이 현명하다. 하루를 끝낸 뒤 마시는 커피 한 잔, 동료와의 소소한 농담, 힘든 하루를 버티고 돌아와 먹는 컵라면 한 그릇 같은 사소한 순간들이 쌓여 우리의 삶을 버티게 해 준다. 텐션을 높여줄 나만의 취미를 만들어도 좋다.
원래 회사는 재미없고 따분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것이다. 삶은 본래 완벽한 의미로 가득하지 않다. 그렇기에 때로는 별것 아닌 순간에서도 기쁨을 찾을 수 있다. 일상의 작은 성취들이 쌓여 결국 우리가 살아갈 이유가 된다.
P.S. 우리는 오늘도 의미 없는 일을 하며 의미를 찾느라 의미 없는 고민을 한다. 그게 바로 직장인의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