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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음을 놓았을 때 조금 더 오래간다.

by 달빛소년

[오래가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는 오래가길 바란다.

관계도, 일도, 감정도, 때로는 좋아하는 계절까지도.

마음이 가 닿은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붙들고, 아끼고, 지키려 애쓴다.


하지만, 삶을 조금 더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오래가길 바라는 마음이 오히려 오래가게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의외로, ‘꼭, 오래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지낼 때, 어떤 것들은 뜻밖에 오래 남아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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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을수록 멀어지는 것들]


누군가를 너무 좋아했을 때가 있다.

그 사람의 작은 말투, 손짓, 밥 먹는 속도까지 눈에 담으려고 애썼다.


“우리 오래 보자.”

“이런 날, 자주 만들자.”


말로는 그렇게 가볍게 주고받았지만, 내 마음은 늘 조마조마했다. 이 사람이 식어버릴까 봐.

그 불안은 말과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묻어 나왔다. 자꾸 확인하려 하고, 보채고, 그 사람이 나에게 보내는 무심하고 사소한 신호들에도 크게 반응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참 뒤에 그 사람이 한 말이 마음에 남는다.


“너랑 있으면 편하지 않았어. 늘 뭔가 증명해야 하는 느낌이었어.”

나는 안다. 그 증명은 관심과 애정이라는 것을.


결국 나는 사랑을 주고 있었던 게 아니라, 오래가기 위한 조건을 강요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말은 결국 이렇게 들렸다.


“나는 그냥, 너랑 아무 생각 없이 있고 싶었어. 오래가지 않아도, 그 시간이 좋으면 되는 거 아니야?”


[오래갈지 말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일]


비슷한 일은 일에서도 있었다. 첫 직장. 첫 프로젝트. 첫 인정.

그것들이 너무 소중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버텼다. 놓치고 싶지 않았고, 이 일을 영원히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팀은 해체됐고, 프로젝트는 갑작스레 종료됐다.

그날 밤, 퇴근길에 누군가와 통화하며 울면서 말했었다.


“이 팀 오래가게 하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다 소용없었어.”

그리고 그 친구가 말했다.


“너무 오래가게 만들고 싶어서 네가 너 자신을 오래 못 버틴 거 아닐까?”

그 말이 꽤 오래 남았다.


어떤 것들은 내가 아무리 원해도 오래갈 수 없다.

반대로, 마음을 살짝 놓았을 때 뜻밖에 오래가는 것도 있다.


[오래가게 하고 싶다면, 오래갈 거란 욕심을 내려놓을 것]


요즘은 다짐 대신 기도를 한다.

“부디 오래갔으면.”


하지만 그다음 문장을 덧붙인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도 괜찮아.”


그러면 마음이 덜 조급해진다.

상대가 조금 무심해도,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아도, 내가 나를 놓치지 않게 된다.

예전에 정말 좋아했던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너는 좋은데, 네가 너 자신을 너무 조이면서 나까지 불편해졌어.”

그때는 이해 못 했지만, 이제는 안다.


‘오래가게 하고 싶은 마음’이 결국 나 자신을 가장 먼저 질리게 만든다는 걸.

지금은 사람을 만나도, 무언가를 시작해도 속으로 이렇게 다짐한다.


“좋으면 좋고, 끝나도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래서 지금을 잘 보낸다.


그런 관계는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헤어져도, 멀어져도, 마음 어딘가에 따뜻한 기억으로 오래 존재한다.


[끝을 상상하지 않을 때, 순간은 깊어진다]


한때는 모든 걸 오래가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 지금은, 꼭 오래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오래가지 않아도, 그 시간에 내가 웃었고, 마음이 움직였고, 기억이 남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삶은 내 뜻대로 안 된다.

그래서 마음까지 조이면, 삶이 너무 피곤해진다.

조금 느슨하게,

조금 유연하게,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누리는 마음으로 지내자.

그러면 이상하게

그게 더 오래간다.


P.S. 나는 당신이 오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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