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2025년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회사를 옮기고, 강제로 부서 이동된 자리에서도 내 업무를 제대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냥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그 목표를 위해 꽤 많은 것을 포기했다. 밤낮없이 일했고, 주말도 반납했다. 아이들과 보내야 할 시간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렸다.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육아휴직자의 업무까지 떠안았다. 회사에서 터진 이슈들을 수습했고, 조직이 외면한 문제들을 대신 해결했다. 과정이 힘들었을 뿐, 결과는 분명했다. 숫자도 있었고, 성과도 있었다.
그런데 돌아온 평가는 최악이었다. 이유를 묻자 “결과보다 과정이 좋지 않았다”는 말이 돌아왔다. 설명이나 근거 대신 폭언과 모욕이 이어졌고, 심지어 가족까지 들먹이며 비난을 받았다. 반면 성과가 없고 늘 여유롭던 동료들은 나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순간 알았다.
이곳에서의 평가는 기준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는 것을. 일을 제대로 하는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 방식이라는 것을. 결국 당장 월급이 줄었고, 내년 연봉 인상도 사라졌다. 이 상황을 겪고도 아무 감정이 없을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하면 분노했다. 반드시 기억하겠다고, 잊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래서 내년의 목표는 아주 단순해졌다. 더 잘 버티는 것이 아니라, 이 회사를 제대로 떠나는 것이다. 나를 깎아내리며 유지해야 하는 자리에 더 이상 나를 묶어두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소모하는 상사와 조직에, 말이 아니라 결과로 경고하는 것이다. 동시에 회사 밖에서, 지금보다 훨씬 온전한 나의 가치를 찾는 것이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묻는다. 올해 계획은 뭐야? 이번엔 뭘 이루고 싶어?
나는 매년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춘다. 대답을 못 해서가 아니라,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다. ‘계획’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압박감 때문이다. 계획은 언제나 성실해 보인다. 잘 짜인 계획표는 인생이 통제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계획을 세울수록 더 자주 무너졌다. 지키지 못한 날이 쌓일수록 스스로에게 실망했고, 그 실망은 곧 자책이 되었다.
처음에는 계획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게을러서, 의지가 약해서, 끈기가 부족해서 계획을 못 지킨다고 여겼다. 그래서 더 촘촘하게 계획을 세웠다. 주 단위로, 월 단위로, 심지어 하루 단위로.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인생은 한 번도 계획표를 존중해 준 적이 없었다. 야근은 예고 없이 늘어났고, 몸은 갑자기 아팠고, 사람 관계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럴 때마다 계획표는 나에게 묻는 것 같았다. “왜 이걸 못 했지?” 그리고 그 질문은 언제나 나를 향해 있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계획은 나를 도와주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이미 충분히 평가받고 있었다. 회사에서, 조직에서, 숫자와 표로. 그리고 무엇보다 남들보다 훨씬 가혹하게, 나 스스로에게서. 그런데 새해가 될 때마다 나는 굳이 또 하나의 평가표를 만들어 내 손으로 나에게 들이밀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르게 해 보기로 했다.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목표만 남겼다. 목표는 계획과 다르다. 계획이 “언제, 어떻게, 얼마나”라면 목표는 “어디로”에 가깝다. 목표는 방향이고, 계획은 속도와 경로다. 나는 방향만 정하기로 했다. 속도는 그날의 컨디션에 맡기고, 경로는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있도록. 예전의 나는 매일 같은 속도로 걷지 못하는 나를 쉽게 실패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람은 매일 같은 상태로 살 수 없다. 어떤 날은 출근만 해도 충분한 날이 있고, 어떤 날은 평소보다 두 배는 멀리 갈 수 있는 날도 있다. 그 차이를 무시한 채 늘 같은 기준을 들이대는 건 성장이 아니라 폭력에 가깝다.
목표를 세우고 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도 되고, 이번 달에 못 가면 다음 달에 가도 된다. 중요한 건 아예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올해는 돈을 많이 벌겠다”가 아니라 “돈 때문에 덜 불안해지는 쪽으로 가겠다.” “이직에 성공하겠다”가 아니라 “나를 소모시키는 자리에서는 조금씩 멀어지겠다.”
이 목표들은 완료 체크가 불가능하다. 대신 나를 덜 몰아붙인다. 그리고 묘하게도 이런 목표를 가지고 있을 때 나는 더 오래 움직인다. 계획은 나를 달리게 만들었지만, 목표는 나를 걷게 만든다. 지치지 않게. 우리는 종종 계획이 없는 사람을 의욕 없는 사람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계획이 없다고 해서 방향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방향을 잃었을 때 사람은 계획에 집착한다. 이 길이 맞는지 모르겠을수록, 불안할수록 체크리스트는 늘어난다. 하지만 방향이 분명하다면 조금 느슨해져도 괜찮다. 지금의 나는 완벽한 한 해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덜 무너지길 바란다. 나를 배신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리듬을 찾고 싶다.
그래서 2026년에는 계획 대신 목표만 들고 가려한다. 해야 할 일보다, 되고 싶은 상태를 먼저 떠올리면서. 어쩌면 이 방식은 눈에 띄는 성과를 빠르게 만들어주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미워하며 달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해는 늘 새롭지만 사람은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나를 바꾸겠다는 계획 대신, 나를 데리고 가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중간에 쉬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이 방향으로 계속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는 나를 다그치는 해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해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