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회사에는 당신을 지치게 만드는 사람이 한 명쯤 있을 것이다.
그가 상사일 수도 있고, 같은 공간에 있지만 되도록 마주치고 싶지 않은 동료일 수도 있다. 혹은 고객일 수도 있다.
일은 버틸 수 있는데, 사람은 버티기 어렵다.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곳이다. 그 대가로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환경 속으로 들어간다.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업무는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 준비하고, 노력하고,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말투를 바꿀 수도 없고, 성격을 고칠 수도 없으며, 그날의 기분까지 관리해 줄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저 사람만 없으면 회사가 조금은 편할 텐데.’
그러나 사람을 바꾸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다면 떠나는 선택도 있다.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문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계속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는 사람들이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같은 회의에 앉는다. 참고 또 참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닳아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이미 많이 마모된 사람들. 직장인이 회사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가 인간관계라는 통계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예민한가.’
‘내가 문제인가.’
사람 때문에 힘든 것은 특별한 약함이 아니라 너무나 정상적인 반응이다.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경계를 무시한다. 불필요한 간섭과 과도한 요구, 선을 넘는 농담. 그들은 감정을 전가한다. 자신의 불안을 타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그들은 인정욕구가 강하다. 타인을 깎아내려야 자신의 위치가 확인된다. 이들이 특별히 악해서라기보다 자기감정을 다루는 능력이 미숙한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 미숙함의 비용을 우리가 대신 지불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째, 거리의 재설정이다.
물리적으로는 어려워도 심리적 거리는 만들 수 있다. 그 사람의 말이 내 전부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 그 사람의 평가가 내 가치의 총합은 아니라는 것.
둘째,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그가 변하길 기대하면 계속 실망하게 된다. 예상 가능한 사람으로 정의하면 충격은 줄어든다.
셋째, 회사 밖의 나를 키우는 일이다.
회사 안의 나만 존재하면 그 한 사람의 말이 내 세계 전체를 흔든다. 그러나 회사 밖의 관계, 취미, 공부, 글쓰기, 다른 정체성이 단단해질수록 타인의 무례는 조금 작아진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지 존재를 증명하는 곳은 아니다.
누군가 때문에 출근이 무거워질 때 자신을 탓하지 말자. 우리는 무례와 무시, 예측 가능한 불편함에 지치도록 설계된 존재다. 그 안에서 아무렇지 않기를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일지도 모른다.
사람 때문에 지치는 것은 당신이 문제여서가 아니라 그 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조를 당장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구조에 나를 완전히 내어주지는 않을 수 있다. 오늘 출근길이 유난히 무겁다면 한 걸음만 물러서 보자.
그 사람은 당신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