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해

일상 에세이 : 세밀한 행복

by 박매력

어릴 적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우리 집에 모이면 엄마는 아끼는 커피잔에 믹스커피를 타서 내오곤 했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둥근 찻상을 중심으로 아주머니들이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면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방문이 닫힌 방 안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척을 했다.

그러다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어지면 방에서 나와 거실을 가로질러 지나가야 했는데, 그럴 때면 아주머니들이 마시고 남은 커피가 잔 바닥 가장자리에 원을 그리며 굳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곤 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커피잔 안에 그려지는 옅은 커피색의 동그라미. 그 모습이 지금도 인상 깊게 머릿속에 박혀 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커피가 어른들의 전유물인 듯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나누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커피를 철저히 나에게서 금지시켰다.

그때만 해도 커피는 뭐랄까 중학생인 내 눈에도 어딘가 어른스러운 문화, 이를테면 담배와 술보다는 약하지만 왠지 모르게 일찍 시작해서 좋을 것 없는 느낌을 주는 성인들의 전유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요즈음처럼 몇 발자국만 나가도 널린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니라 작정하고 커피숍이라는 곳을 가야 커피를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커피 혹은 카페라는 문화가 양지에서 대중화되지 않았었으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조금 앞서가는 친구를 따라 나는 카페에 처음 가게 되었다. 나름대로 잔뜩 멋을 부리고 만난 우리는 자주 가던 번화가에서 가장 유명해 보이는 카페를 선택했다. 카페의 이름은 베리 굿 맨. 창문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창 밖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건물 이층에 위치한 카페였다. 우리는 미세먼지라고는 한 톨도 없을 것 같은 아주 맑은 여름날, 밖이 잘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주문을 했다. 공교롭게도 셋 다 모두 같은 메뉴를 주문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신 날이었다.

그때는 테이크아웃이라는 개념도 잘 없어 그저 카페에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 구경에, 질릴 때까지 실컷 수다를 떨며 커피 한 잔을 다 마신 뒤에야 카페를 나왔었다.

우리가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꽤 큼직한 투명잔에 얼음과 함께 가득 채워져 나왔고, 그 옆에는 도자기 소재로 된 새하얗고 작은 주전자 모양의 그릇에 투명한 시럽이 함께 따라왔다.

그때만 해도 그것이 무언인지 몰라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먹어보고 (시럽이기에 당연하게도 매우 달았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쭈욱 들이킨 뒤에 서로의 얼굴에 인상이 찌푸려지는 걸 보고 낄낄 웃고 나서야 그 작은 주전자 모양의 용기에 든 시럽을 커피잔에 온전히 다 털어 넣었다.

커피의 향도 맛도 모르던 그때의 난 휘휘- 저어 시럽이 잘 섞인 달달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뭐 나름 괜찮네, 그렇게 스스로 주문 아닌 주문을 걸었다. 당시 용돈으로는 꽤 비싼 가격이었기에 그 한 잔을 다 비워낼 생각이었지만 결국 반 정도밖에 먹지 못하고 카페를 나왔던 것 같다.


그 후에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또 다른 커피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학교 주변에 마땅한 카페가 없던 탓에 공강이면 늘 학교 앞에 유일한 카페였던 던킨으로 친구들과 향하곤 했다. 카운터 앞에 서서 그 많은 메뉴들을 놓고 한참을 고민하다 그때 처음으로 아이스 라떼라는 걸 주문해 보았고 “처음부터 섞지 말고 밑에 있는 우유 층을 빨대로 몇 모금 마신 뒤에, 위의 커피 층과 밑에 남은 우유를 마저 섞어 마시세요.”라는 친절한 사장 아저씨의 설명으로 그 메뉴의 음용법을 알게 되었다. 아마 정확히 아이스 카페 라테가 아니라 바닐라나 캐러멜 시럽이 섞인 라테 종류였던 것 같다.

그때도 처음으로 도전한 라테에 대한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음료를 받아 빨대를 꽂고 쭉 들이키니 아래층에 우유와 시럽이 입안으로 쭉 들어오며 달달하고 부드러운 느낌에 맛있다며 좋아하다가 우유 층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사장님 말대로 커피 층과 우유 층을 빨대로 잘 섞고 난 뒤 들이켜자 ‘윽, 왜 이렇게 써!’ 하며 인상을 썼던 기억이 난다. 이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두 층을 섞어서 중간의 달달함과 중간의 쓴 정도로 마실 걸 하는 후회를 했었다.

카페가 희소했던 탓에 그 후로도 던킨은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고 그곳에 있는 모든 음료와 도넛을 한 번씩 다 경험해갈 때 즈음, 나는 그런대로 커피를 좋아하고 즐기게 되었다.


지금은 뭐 그리 커피 맛에 민감하고 커피를 잘 안다고 할 순 없지만 나름대로 맛있는 커피집을 찾아다니며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때론 커피 맛보다 카페의 분위기에 이끌려 카페 투어를 가기도 한다. 여행지에 가서도 프랜차이즈가 아닌 그 지역만의 느낌이 살아 있는 로컬카페를 꼭 한 곳은 가본다. 물론 여건이 되면 그 카페에서 만든 음료를 담아주는, 그 카페의 로고가 박힌,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머그컵을 사는 것도 일종의 여행 습관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나의 커피 취향은 깔끔하고 칼로리도 적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정착하게 되었다.


요즈음은 카페를 가면 중학생들과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서너 명이 함께 와서 허니버터 브래드나 케이크 종류를 시켜서 함께 후다닥 먹고 나가는 아이들, 혹은 둘이 와서 커피 한 잔씩을 시켜놓고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그들만의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럴 때면 생각한다. 내가 중학생, 고등학생일 때는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나와 허름하고 작은 슈퍼마켓에서 포카리 스웨트 하나씩 사서 걷거나, 놀이터 그네에 걸터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세대가 변하고 문화가 바뀌고 그렇게 추억도 바뀌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들에게 커피 그리고 카페는 어떤 의미일까.

나처럼 모든 것이 어설펐던 고등학교 시절, 잔뜩 멋을 부리고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듯 카페에 들어서고는 내가 주문한 커피가 어떤 맛인지도 모른 채 테이블 위에 놓인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마주해 당황했던 기억처럼 모든 것이 어설프고 서툴렀지만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할 만큼 인상 깊고 소중한 추억일까.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는 이소라의 노랫말처럼 이토록 사소한 커피에도 추억이 다른 것처럼 수없이 많은 계절과 시간을 보내며 쌓인 추억들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 순간에도 다르게 쌓인다. 그리고 지금은 소박하게 바란다. 내가, 내가 사는 인생이 이왕이면 부디 추억이 많은 삶이었으면 하고 말이다. 대단히 화려하고 주목받는 삶은 아니어도 평범하지만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줄 아는 그런 삶이었으면 좋겠다. 그 삶 속에서 쌓이는 추억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문득 떠올렸을 때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딱 그 정도의 추억들이 많이 그리고 겹겹이 쌓이는 그런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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