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독설 하기

일상 에세이 : 세밀한 행복

by 박매력

요즈음은 스스로를 소개할 때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을 설명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MBTI라는 네 개의 영문 조합을 던져주면 상대는 알아서 나의 성향을 추측한다.

요즈음처럼 내향인이 그 자체로 인정받아온 세월이 얼마나 되었을까.

MBTI가 활발해지기 이전의 내향인의 이미지가 혈액형 A형으로 대표되는 소심함, 낯가림, 말 수가 적은 사람으로 표현되었다면 요즈음은 섬세함, 따듯함, 알고 보면 의외의 매력이 내재된 사람으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내향인으로써 새삼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유년기, 청소년기 시절의 나를 생각해 보면 나는 내향인 중에서도 극 내향인인, 트리플 I형의 사람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활발한 친구들을 만나 성향이 정말 많이 바뀌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여러 풍파와 세월의 짬으로 터득한 넉살의 콜라보로 이제는 어딜 가서 꽤나 너스레를 떨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아직도 어려운 상황이 있다면 상대방이 원하는 걸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하는 경우이다.

그나마 업무적인 상황이라면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일적인 관점에서만 말하려고 노력하는데, 일상에서 매 순간 마주하는 예기치 못한 상황들에선 여전히 어렵다.


예를 들면 다 같이 점심 메뉴를 고르거나 모임장소를 정할 때 자신 있게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 나는 그런 상황들이 특히나 어렵게 느껴진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렇다.

내가 강력하게 어떤 메뉴를 제안했을 때 상대방이 사실 오늘 그 메뉴만큼은 정말 먹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나보다 더 내향적인 탓에 나에게 거절의 의사를 말하지 못해 억지로 그 메뉴를 먹고 오늘의 점심을 즐겁지 않게 보내는 상황에 대한 걱정.

다른 하나는 내가 정말 먹고 싶은 메뉴나 가고 싶은 음식점이 있어 강력하게 그것을 말했는데 상대방이 그것을 별로라는 식으로 치부했을 때, 내가 무안해지거나 상처를 받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다.

크게 이 두 가지 상황에 대한 지나친 염려로 인해, 나는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면 최대한 나의 의견을 숨기고 대세 혹은 목소리가 큰 사람의 의견을 따라가곤 한다. 또 그렇게 흘러가는 상황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보다 훨씬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런 나에게 직장에서 알게 된 K라는 친구는 부럽기도 하고 닮고 싶기도 한, 한편으로는 연구 대상인 친구였다. 동글동글한 이목구비에 귀엽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K는 참 독설을 잘했다.

(사실 독설이라기보다는 솔직하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지만 우리는 장난 삼아 K를 독설가라고 칭하곤 했다.)

그 대상이 직장 동료이거나 상사일 경우에도 예외는 없었다.

내 스타일이 전혀 아닌 옷을 상대방이 예쁘다고 극찬할 때 보통의 나라면 그냥 그 분위기에 맞추고 상대방에게 호응하기 위해 그렇다고, 정말 예쁘다고 말했을 텐데 K는 '제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대리님은 저랑 취향이 정말 다르시네요.'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얼핏 상상해 보면 찬물을 끼얹은 분위기가 될 수도 있는 말이지만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또 업무 시간이나 회의 시간에 상사가 지시한 내용이 누가 봐도 비합리적이고 실무와 맞지 않은데, 누구 하나 나서서 상사에게 말하기를 주저할 때에도 K는 상사에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물었다. 그 말투는 단호했지만 버릇없거나 차가움과는 완전히 달랐다.


나는 K의 말을 들은 그 누구도 기분이 상하거나 표정이 굳는 걸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상대방의 생각에 반대 의견을 말하는 K의 말투나 표정이 딱딱하거나 차갑지 않았고, 오히려 웃음기를 띤 장난스럽고 사랑스러운 말투였던 것이 한몫했을 것이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서 침을 뱉는 것이랄까. 사실 침이라기보다는 올바른 소리가 맞는 말이지만 사회에서 쉽사리 할 수 없는 모두가 “예스”라고 하는 상황에서 “노”라고 말하는 K의 모습에서 나는 당당하고 솔직한 매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마주한 것 같다.


가끔 상대방의 의견에 죽자고 달려들어 반박하는, 비난에 안달 난 사람들을 종종 보곤 한다. 특히나 그런 사람들은 회사에서 어떤 안건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 그것에 반대하는 행위, 즉 그것의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자신이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른 의견이 없음, 혹은 너무 좋음을 말하는 것에도 우리는 때때로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런 세상에서 좋을 것에 대해 정말 좋다고, 나 역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케케묵은 침묵을 깨고 먼저 나서서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멋지다. 또 그것에 동의하지 않음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배제한 채 솔직하고 담백하게 의견을 말하는 것 역시 그렇다.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하는데 솔직한 사람.

그런 사람은 참 멋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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