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지 못한다면 성과가 아니다

정량 지표가 없는 성과는 있지만, 정성 지표까지 없는 성과는 없다.

by 너클커브

KPI, OKR, MBO 등등.. 조직의 목표를 관리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니고 조직 특성과 일의 성격을 가장 잘 반영하는 방식을 선택해서 합의에 따라 정리하고 관리하면 된다. KPI는 제조업에서나 쓰는 구식이고 요즘은 OKR이지라는 식의 이야기도 많이 회자되는데 본질적으로 두 가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성과 관리의 핵심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회사의 관점에서 가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plan - do - see의 프로세스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무조건 전자다. 회사의 관점에서 가치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없다.


Out-put은 어떤 일을 수행한 결과물이다. 개발자라면 코드의 숫자, 기획자라면 기획안의 페이지 수, 채용 담당자라면 등록한 채용 공고의 숫자 이런 것들... 업무를 했다면 이런 것들이 어떤 형태로든 나온다. (요즘의 나 같은 경우라면 면담의 횟수?) 이런 Out-put을 많이 만들어낸 날이면 스스로에게 혹은 동료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와, 오늘 진짜 바빴어, 진짜 열심히 일했어." 사실일까?


개발자가 작성한 코드가 품질이 나빠서 코드 리뷰에서 다 수정을 받으면 어떨까? 더 나쁜 경우 코드 리뷰는 통과했는데 실제 서비스에 올렸더니 버그가 생기는 코드였나면? 기획안이 너무 나빠서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면? 공고는 올렸는데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다면? 미팅을 했는데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말 실수를 해서 문제가 증폭되었다면? 이런 경우에 이 일들은 회사 관점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실패도 학습이라고 하면 미세한 크기로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열심히 움직이긴 했으나 성과는 하나도 나오지 않은 상황은 생각보다 빈번하다.


성과가 없는 일을 너무나 열심히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회사 관점에서의 성과에 방해가 되는 일을 담당 부서 혹은 담당자 고유의 업무라며 몰입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런 경우는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하는 일과 회사의 성과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아서이다.


방향 설정을 하지 않은 경영진의 문제인지 설명해주지 않는 리더의 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저는 그저 시킨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성과가 없다니 억울합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회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뭔가 연결되지 않은 느낌이 왔는대도 이런 노력이 불편하고 어려울 것 같아서 포기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Plan- do -see 의 과정은 이 연결에 대해 스스로 깊이 고민하고 답을 모색할 때 의미있게 작동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우리 팀/회사에 연결되어 있는지, 나의 리더와 경영진도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실행 중간 중간 나온 out -put 의 수준이 원하는 성과(Out-come)를 향해 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잘 가고 있다면 속도를 더 내고 잘 가고 있지 않다면 목표를 수정하든 방식을 개선하든 노력이 필요하다. 개념상으로는 어렵지 않다. 실행도 아주 어려운 건 아니다. 불편한 장면에 노출될 각오와 주기적인 반복의 번거로움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잘 안 된다. 스스로의 성과를 정확히 측정하는 개인과 조직의 성과를 공정하게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조정하는 조직은 의외로 별로 없다.


이럴 때 자주 등장하는 핑계가 '우리 일은 정량적으로 성과를 측정할 수 없다'다. 내가 속해있는 HR 또한 그렇다 . 채용 인원의 숫자, 발령의 건수, 면담 횟수 이런 것들은 성과가 아니다. 실무자인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고 Out - come이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HRD 일을 할 때는 교육 프로그램의 만족도를 지표로 삼은 적이 많다. 많은 교육 담당자들이 알고 있듯 이 만족도라는 지표는 프로그램의 질과 1:1 매칭이 되지 않는다. 일찍 끝내줘서 좋았다. 간식이 맛있었다. 재이밌었다. 이런 피드백과 함께 남긴 숫자들이 교육의 성과를 얼마나 정확히 알려줄 수 있을까?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다." 는 명언이 있으나 사실 우리가 하는 일 중에서 그 일의 가치를 어떠한 단일 지표들로 측정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세일즈? 영업?은 실적으로 증명된다고 하지만 투자가 아닌 제품이나 상품을 파는 세일즈라면, 제품 자체의 품질과 업황, 경쟁 제품의 유/무 등...개인의 관리 범위를 벗어나는 변수가 너무 많다. 뛰어난 기획자-개발자-디자이너가 팀을 이루어서 만든 서비스가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서비스는 시장과 고객의 상황에 따라 혹은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변수에 따라 성공하고 또 실패한다. 최선을 다한 노력이 성과와 1:1로 대응되지 않는 영역이 너무 많다. 그래서 숫자로 가두어진 성과는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년 측정할 수 없었던 그 일들을 모아서 성과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공정한 평가는 내가 높게 받은 평가뿐" 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평가 시즌마다 여기저기서 들린다. 일정 부분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보면 결국 성과는 내가 한 일이 나의 평가권자 혹은 회사의 이익에 어떻게 연결되었고, 얼마나 기여했는지이다. 그리고 이 설명을 해야 하는 사람은 당연히 "나"다. 미룰 수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리더와 조직의 관점으로 내 일의 성과를 정리해보자. 아직 올해는 2달이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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