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나를 설명하고 이름 붙이기

모호함과 생경함의 경계 속에서 깨지고 생성되는 삶도 삶이라 한다면,

by 유영


나는 나를 무엇으로 설명하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정체성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면 분명 수많은 것들을 나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깊이 생각해 보자면 나를 이루는 것들 중에 대부분은 명확하지 않고, 때때로 변하기도 하며 전부가 되었다가 일부가 되기도 한다. 나는 종종 바쁘기도, 게으르기도 했으며 많은 것을 쥐었다가 또 많은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진실이라고 생각해 온 믿음이 무너지기도 하고, 거짓이라 생각해 온 마음이 진실이 되기도 했다. 삶이 어떤 날에는 무섭도록 명확했고, 어떤 날에는 삶이 삶이 아니게 되었음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불완전해지기도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삶과 나를 무엇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지 도통 감을 잡기가 참 어렵다.


모호함과 생경함의 경계 속에서 깨지고 생성되는 삶도 삶이라 한다면, 나는 그냥 그 자체로 나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안녕하세요? 저는 저예요. 좀 자주 바보 같은데, 그래도 맡은 일은 열심히 해요. 어느 날은 내일이 없는 것 마냥 열심히 살고, 어느 날은 오늘이 영원할 것처럼 게으르게 살아요. 이것도 저것도 저랍니다… 같은 말들로 이루어진 소개를 자기소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최근에 하은빈 작가님이 쓰신 '우는 나와 우는 우는' 책을 읽었다. 장애를 가진 연인을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이 장애를 가진 연인의 병이 나와 같은 근육병이라서 흥미가 생겨 읽게 되었다. 책에 대한 후기를 쓰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이 책을 읽으면서 '연애'에 있어서 나의 장애는 어느 정도를 차지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 연애이자 마지막 연애를 22일 만에 마무리했기에, 그것으로 '연애에서 내 병은 이 정도를 차지하는군'이라고 하기 상당히 애매하긴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자기도 장애가 있으면서 내 장애에 대해선 상당히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했다. 그건 마치, 약함과 약함으로 대결하면 내 근육병은 매우 약함에 속해서 나름의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다고 해야 할까. 당연하지만, 그걸로 이긴다고 해서 기쁘지는 않다.


내 장애로 인해서 헤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연애 과정 속에서 내 장애로 인해 그가 불안해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걸 지켜보는 나의 입장에선 꽤 난감했다. 내 소멸과 약함이 상대를 힘들게 하고, 먼 미래를 그릴 수 없을 거라는 걸 그때 당시는 몰랐기 때문이다. 상당히 짧은 연애였음에도 불구하고도 내 병이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나 크다면, 나를 오랫동안 사랑할 사람을 만나게 될 시에 그 사람에겐 또 어떤 영향이 갈지 생각하니 문득 두려워졌다. 상대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 하는 연애는 아니니까, 차라리 이럴 거면 혼자 사는 것이 더 마음은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참, 모호하고 불분명하고 모든 것은 일부이지 전부가 아닌 특징들만 수두룩 하지만, 연애 상대로는 그게 또 아닌 것 같다. 왜일까? 왜 나는 장애는 일부라고 생각하면서도 '연애'라는 키워드 앞에서 놓이면 자꾸만 장애가 전부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내가 짝사랑했던 이들에게도 내가 차였던 이유에 장애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소개팅 제안을 받았을 때도 '상대는 내가 장애가 있다는 걸 알고 계셔?'가 제일 먼저 나오기도 했다. 사랑은 나를 완전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자꾸만 깨우치게 하기도 했다. 자꾸만 아직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없지만, 나를 사랑하게 될 시에 맞이할 나의 약함과 소멸, 그리고 돌봄으로 상상 속의 그를 얹히게 할 생각을 하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우는 나와 우는 우는'을 읽고 나서는 이런 생각이 더 심해졌다.


나를 소개할 나와, 나를 소개해줄 누군가를 상상한다. 나와 그들은 나를 무엇이라 칭하며 소개할까.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떼어낼 수 없는 것의 크기에 대해서 생각한다. 무엇이 일부이고 전부일까.


나오지 않는 답을 찾아 헤매는 날이 길어지고 있다.

월요일 연재
이전 03화02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