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여름의 안정제는 글쓰기

몸은 병이 있기에 불가능하지만, 글쓰기는 찢고 붙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by 유영




마음과 몸이 무른 나에게는 가장 취약한 계절이 여름과 겨울이다. 희귀 난치성 근육병(근육이 점점 약해지는 병)으로 인하여 외출 시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나는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에는 대부분 집에 있는 것이 안전했다. 비로 휠체어가 젖으면 곤란하고, 눈 때문에 미끄러져도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마철이나 폭설 기간에는 꼭 외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에는 집에만 머무르는데,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꼭 생각들이 깊어지고 많아진다.


나는 나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어쩐지 좀 밉고 싫어졌다. 무르고 해진 몸이나 마음들은 밖에서는 잘 티가 안 나지만, 집에서는 불쑥불쑥 정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어떤 날에는 불안했고, 어떤 날에는 집에서 넘어졌는데 일어나지를 못해 20~30분을 일어나는 것에만 시간을 썼다. 엉거주춤, 이상한 자세를 하며 겨우겨우 침대에 몸을 앉히면 굳고 약해진 몸을 실감하게 되었다. 분명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쉽지는 않더라도 맨바닥에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이 가능했는데, 계단을 오르내렸는데 말이다.


근육병이라는 것은, 운동이나 무리하게 되면 근육이 더 약해지게 된다. 그러니 유지는 가능하더라도 좋아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말은 즉슨, 시간이 앞으로 갈수록 몸은 멈추거나 뒤로 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몸이 약해지는 것을 막으려면 재활치료 등의 몸에게 시간을 투자를 해야 하는데, 요즘은 그럴 시간과 마음이 부족했다. 결국 저번 달에 외래를 다녀왔을 때, 다리 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수술할 여건이 되지 않아 결국 수술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스스로 내렸다. 수술 날짜를 정하고 싶을 때 예약하라며 예약도 해주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이상했다. 처음 그 병원을 갔던 때가 2014년이었는데, 2025년이 되고 나서는 나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선택권이 주어진 것이 아닌, 불가피하게 수술이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병원을 가지 않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결국, 병을 멈추는 것이 아닌 시간과 함께 약해지기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했다.


겉보기엔 나에게 몸의 진행 속도에 대한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도 한때는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약해지면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늘 나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는데, 나아감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져 있지 않는 한 몸에 대한 선택은 무엇을 하건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근육이 찢기고 붙는 과정은 영영 경험하지 못하는 걸까. 아픈 시간이 더 나음을 만들어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버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는 삶이 되는 걸까. 죽음과 소멸에 더 가까운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몸은 나에게 찢고 붙는 경험을 주지 못한다면, 나는 어디서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문득 떠오른 말이 있다. 글쓰기는 근육과도 같다고. 글쓰기는 근육과도 같다면 몸은 병이 있기에 불가능하지만, 글쓰기는 찢고 붙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몸의 근육 대신 글쓰기의 근육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내게 주어지는 선택권이 있었으니까. 멈추거나, 뒤로 가거나, 나아가거나. 나아갈 수 있다는 선택지가 있었다. 그렇다면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나에게 글은 항상 어릴 적부터 함께 해왔고, 특히나 마음이 물러질 때 글을 곁에 늘 붙이고 살았으니까. 나아갈 수 있다. 나아갈 수 있는 선택지가 존재한다…….


어쩐지 그런 사실만으로도 가장 취약한 계절인 여름을 보내는 것이 조금은 덜 힘들어질 것 같다. '같다'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아직 확신은 없기 때문이지만. 불가능한 일이야. 취약한 여름엔 무르고 약해질 거야. 같은 확신보다는 불명확한 나아감이 더 긍정적이지 않을까. 그리고 글쓰기의 근육을 키우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몸과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또 별개의 일이었다. 몸은 여전히 소멸하고, 마음은 여전히 무르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고 해서 근육병이 나아질 순 없고, 마음이 전부 괜찮아질 순 없는 거니까. 그래도 버틸 수는 있게끔 도와주긴 했다. 여름의 안정제는 글쓰기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컹한 마음이 불안해지면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신경안정제를 먹는데, 이 신경안정제의 크기가 상당히 작다. 새끼손가락의 손톱 크기 보다 조금 더 큰 약이라서 처음엔 이것이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 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약은 효과를 잘 발휘해 주었다. 마음이 깨끗하게 안정되지는 않더라도, 대략 85% 정도는 안정을 느끼게끔 해주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지만 신경안정제를 자주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루 권장 최대 개수가 있고, 또 근육병으로 인해 조금 조심스럽다며 정신과 선생님이 되도록이면 최대 개수보다 덜 먹는 것을 권하셨기 때문이다. 완벽한 100%의 해결책은 아니었기에, 신경안정제를 먹는다 쳐도 대략 15%, 혹은 먹을 수 없는 100%를 해소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글쓰기가 되어주었긴 했다.


완벽하게 해결되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든 안정제 역할을 해준 것이다. 나에게 안정제 역할을 어느 정도 해주고 있는 글을 생각하다 보면, 그 생각과 연결되어 나의 글을 읽을 독자들을 생각한다. 나는 브런치를 제외하고도 인스타, 틱톡 등의 SNS에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특히 인스타와 유튜브 같은 경우는 유영할 수 있는 위로의 바다를 만들기 위해, 위로를 그리고, 쓰고, 만든다. 대부분은 일러스트 시 작품을 업로드하고 있다. 그러니 위로라는 작품 목표를 가지고 활동 중인 나는, 내 작품이 누군가의 작은 안정제가 되어주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했다. 때로는 너무 작아 보여서 이것이 위로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되지만, 그럼에도 완벽하진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만 있다면. 나와 나의 작품을 봐주는 분들에게 안정제 역할을 해줄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된다면 이 여름을 조금은 덜 힘들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나의 이번 여름의 안정제는 글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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