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습관으로 만든다면
습관은 안부가 되고, 안부는 습관이 될 수 있을까?
나에게 지금 취약한 것을 두 가지를 뽑으라고 한다면, '습관'과 '안부'일 것이다. 기질상 반복적인 수행은 나름 해낼 수 있다고 하지만, 어떤 것들을 '습관'으로 길들이는 일은 유독 어렵게만 느껴진다. 가령 글이나 그림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습관이라던지, 독서나 삶을 이루는 사소한 행위 같은 것. 습관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실패로 남기 십상이었다. 안부도 마찬가지였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아주 많다고는 못 하겠으나) 적절히 있는 데에 비하여 선뜻 안부를 묻거나 답하기가 쉽지 않게끔 느껴졌다. 안부를 묻는 일은 당신이 잘 지내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만, 그만큼 벌어진 시간에 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잘 지내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날로 커져만 갔던 나의 안부 대상자들이 존재한다.
반대로 나의 안부를 전하는 것도 그렇다. 잘 지내냐고 묻는 말에 잘 지낸다고만 대답한다면 간단해질 일인데 자꾸만 마음이 얹힌다. 사실은 아주 잘 못 지내고 있다고, 나는 너무나도 방황하고 있다고. 안부에 대한 대답은 꼭 진실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지내고 있다는 말과 함께 갖춰진 이모티콘을 쓰고 나면 꼭 속이 따끔거렸다.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 연락한 걸 텐데. 잘 지내면서 잘 지낸다고 묻는 안부에 보답해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
잘 안된다는 마음에 대한 안부를 전하면 어떨까. 그러니까, 이것은 잘 지내냐는 물음에 대한 솔직한 안부이다. 잘 지낸다는 말에 담긴 마음이다. 어쩌면 '잘 지내?'라는 말에 '잘 지내'라고 답하는 것은 안부에 대한 습관일지도 모른다. 덜어내고 덜어낸 마음들을, 여기서는 붙이고 붙여 결론은 잘 지낸다는 진실로 끝내고 싶다. 잘 지내려면, 나에겐 안부를 말하고 묻는 습관이 필요하니까.
따라서 '습관 안부'는 안부를 습관으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에세이가 될 것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나의 안부를 전해보려고 한다. 때로는 한 단어에 대한 주제가 될 수도, 일기가 될 수도, 과거를 말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때그때 마다 전하고 싶은 안부를 담으려 한다.
잘 지내지 못한다는 말이어도, 결국은 잘 지내기 위한 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