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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그때의 지옥이 그립다.

by 혀크크


스물한 살.

나도 대한민국의 수많은 남자들처럼

지옥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말 안 해도 다들 알 거다.

그곳은 바로 군대였다.


내가 도착한 곳은 대한민국의 끝자락, 강원도 고성.

북쪽으로 치우친 그 지역은

계절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땅이었고

겨울이면 숨이 목구멍에서 얼어붙었다.

여름이면 군복은 땀에 젖어 살갗에 달라붙었고

그 속에서 하루하루가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다.


‘적응하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고문을 부드럽게 말하는 방식이었다.

아침마다 지겨운 기상나팔에 깼고

정해진 일과표에 맞춰 움직였으며

밤마다 전역일을 혼잣말로 세며 버텼다.

그리고 그렇게 버티는 법을 익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지옥’이 가끔 그립다.


그곳의 삶은 단순했다.

오늘 할 일, 오늘 먹을 밥, 오늘의 근무.

고민은 사치였고 선택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명령이 곧 길이었고

그 길 위에선 생각보다 나 자신을 많이 마주할 수 있었다.


함께 생활하던 전우들은 처음엔 불편한 타인이었지만

어느새 나와 같은 고민을 나누는 존재가 되었고

내가 마주하는 작은 문제들이 함께

풀어야 할 공동의 과제가 되었다.

그렇게 타인과 함께

고민하고, 함께 자고, 함께 욕하고, 함께 웃으며

하루하루는 어느새 견디는 날이 아닌 살아내는 날이 되었다.


반면 지금의 나는 너무 많은 선택 앞에 서 있다.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만 하는 일도 너무 많아서

가끔은 아무것도 선택하고 싶지 않은 날도 많다.


그 지옥 같은 군 생활은

예민하던 나를 조금씩 깎아내렸고

이기적인 말투와 감정 표현도 조금씩 정리됐다.

누군가의 사소한 수고에도 고개를 숙이게 되었고

나 아닌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는 법을 그 안에서 배웠다.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단단하고 걱정 없던 나,

그 어설프지만 강했던 스물한 살의 나는

지금도 다시 만나고 싶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그 고성의 하늘이,

그 매서운 바람과 짜증 나는 점호가,

묘하게 그리워진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그 지옥 같은 시간도 결국

나를 만든 하나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 시절의 나는

나를 살아 있게 하기 위해

매일을 견뎠고, 버텼고,

결국 이 자리까지 와 있었다.


그러니 오늘을 살아가는 나도

그 시절의 나처럼

조금은 더 단단하게

조금은 더 관대하게

지금 이 지옥 같은 하루를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그리움은 그렇게

내가 다시 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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