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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는 사람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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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y 포지


몇 년에 걸쳐 서울과 경기도 곳곳의 아파트를 둘러보면서, 자연스럽게 쌓인 데이터가 하나 있다. 바로 집에는 기운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운은 대체로 그 집에 사는 사람을 닮아 있다.



사례 1. 위례 송파 OOOO 뻥뷰집

위례의 한 아파트를 보러 갔을 때였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풍경이 휑했다. 거실에는 가구 하나 없었고, 소파도 없이 TV만 덩그러니 있었다. 안에는 중년 남성 두 명이 있었는데, 우리가 들어왔는데도 아랑곳 않고 TV를 봤다. 그들은 러닝셔츠 차림으로 바닥에 앉아 있었고, 주변엔 시켜 먹은 흔적이 어질러져 있었다.



준신축 아파트인데도 바닥은 신발을 신고 다녀야 할 만큼 더러웠다. 높은 층에 뻥뷰라 부동산에서는 RR 매물로 소개했지만, 앞이 뚫려 있어서 보이는 풍경이 더 오싹하게 느껴졌다.



방에 들어가 봤을 때에도 역시 별다른 가구가 없었다. 오직 운동기구 몇 개와 벽에 걸린 하나만 있었다. 달력은 마치 90년 대 새마을 금고에서 나눠줬을 것 같이 오래돼 보였는데, 거기 적혀있는 글씨를 보고 흠칫했다.


'OO 구치소'



그 순간 저 거실 바닥에 벽을 기대고 앉아있는 아저씨들의 정체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 집을 시작으로 이후 같은 아파트의 다른 매물들도 둘러보았지만, 다른 집들은 여느 신도시의 아파트같이 괜찮았다. 그래서 앞의 집과 더욱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아마 부동산이 그 집을 먼저 보여준 이유가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례 2. 약수 OOO

갭으로 나온 매물이라 세입자가 살고 있었다. 이미 약속 시간은 정해져있었지만, 공인 중개소 소장님은 세입자에게 1층에서 한 번 더 전화를 한 뒤 지금 올라가겠다고 일러두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현관문에 노크를 했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남편과 나, 그리고 부동산 소장님까지 셋이 동시에 화들짝 놀랐다. 세입자는 만삭에 가까운 임산부였는데, 옷을 거의 걸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뚱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방금 식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집 안에는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세입자는 우리가 집을 둘러보는 동안 셔츠 같은 걸 입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불편했다.



집은 전반적으로 너저분했다. 임산부라 몸이 힘들어서 일까. 그런데 친구들을 보면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아기 방도 말끔히 정리해놓고 빨래도 미리 다 깨끗이 해놓던데.. 그리고 특이하게 냉장고가 거실에 있었다.


힘들어 보이는 세입자와 뭔가 힘들어 보이는 집을 보고 있는 우리도 힘들어서 금방 나왔다.



사례 3. 당산 현대 O차 탑층

3인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부부와 어린 딸이 사는 집.



토요일 아침에 방문하기로 했는데, 당일 계속 연락이 닿질 않는 것이다. 부동산은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 주변의 다른 아파트들부터 보여줬다. 그 사이에도 그 집은 약속 시간을 자꾸 왔다 갔다 하며 바꿨다.


결국 그 가족은 어디 외출할 곳이 있어 집을 나갔다며, 주인 없는 집에 부동산 소장님과 우리만 그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문을 열었는데 신발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신발들로 꽉 차있다 못해 킥보드, 우산 등 온갖 물건 등이 다 나와 있었다.


집 안은 더 가관이었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 건지 거실 바닥에는 알록달록한 장판이 깔려있었고, 창문 앞에는 장난감과 인형들이 쌓여져있었다. 부분 인테리어를 한 집이라고 했는데, 그 디자인마저 조악해서 더 정신 사나웠다.



아이 방에 들어가자 현란한 것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이 방은 그야말로 스티커 천국이었다. 모든 벽이 스티커로 도배가 되어 있었고, 심지어 문과 천장까지도 스티커가 붙어져 있었다. 아이한테는 미안하지만 괴기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다.


집을 나서자마자 남편과 나는 한마디씩 나누었다.


“아 머리 아파.”



“방금 잠깐 정신 착란이 온 거 같아.”



집주인 가족을 보지 않았지만, 안 봐도 어떤 분위기의 사람들인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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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이해할 수 없는 집들이 많았다.


부러진 세면대를 쇠 파이프로 받쳐둔 채, 그대로 사는 집이 있었다. 집에는 엄마와 초등학생 남자아이 한 명이 있었다. 손님이 있는 데에도 남자 애는 장난스럽게 옆에서 엄마 다리를 계속 툭툭 찼다. 그런데 그 엄마는 그 행동이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우리와 대화를 나누었다.



투명 인간이 된 적도 있었다.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며 들어갔는데, 우리를 본체만체 인사 한마디 없이 티비를 보는 아저씨, 물어도 대꾸도 안 하는 아줌마, 그리고 집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훌러덩 옷을 갈아입는 십 대 딸까지. 놀래서 내가 방문을 닫았다.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보면, 그 집에는 이미 안 좋은 기운이 서려있는 것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진다. 그런 집들은 보통 낮에도 어두웠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살아서 집이 피폐해지는 걸까, 아니면 집터가 나빠서 그런 곳에 걸맞는 사람들이 살게 되는 걸까. 순서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집과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다.


부정적인 사례에 대해서만 쓰기는 했지만,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밝은 사람이 사는 집에 가면 분명 좋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방 청소부터 하지 않나. 결국 공간은 사람을 닮고 사람은 공간을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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