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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꿎은 남편 탓하기

장바구니 목록: 서울 집 (5년 전 담음)_15

by Posy 포지


‘서울에 집을 사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후로 많은 일을 경험해 봤다.


내 인생 처음으로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었다. 이름도 긴 광명자O힐OOOOSOO. 정확히는 예비 번호를 받고 내 차례가 와서 뽑기까지 하러 갔지만, 포기하고 돌아왔다.



그 다음번에 구성남 헤OOO 아파트 청약에서도 예비 번호를 받았다. 한 번 경험이 있었던 터라 부푼 마음을 가지고 임장도 다녀왔다. 결국 내 차례는 오지 않았지만.


강동OOO리버파크의 모델하우스를 구경 간 적이 있다. 이 아파트는 미분양이 되었는데, 모델하우스를 보러 갔을 때 내 정보가 털렸는지 불과 몇 개월 전까지 가격을 할인해 준다는 전화가 왔다.


엄청나게 공을 들여 공부한 건 아니지만, 계속해서 부동산 시장에 머무르며 이것저것 시도해 봤다. 또 답은 늘 현장에 있다는 걸 체감하며 궁금하면 무조건 찾아가 보았다. 그랬더니 이제는 서울에 있는 웬만한 아파트가 어디 있고, 얼마쯤 하는지도 다 외울 정도가 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집을 못 샀다. 이게 맞아?!





그러던 어느 날 하루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날 밤 나는 안방에서 자고 있었고 남편은 거실에 있었다. 평소와 달리 남편이 뉴스를 크게 틀어놓은 소리에 이상해서 나가봤다.


“무슨 일 있어? 이 밤에 갑자기 무슨 뉴스야?”



“지금 큰일 났어. 계엄령이 떨어졌대.”



계엄이라면 사회책에서나 보던 단어인데. 남편 핸드폰 속 라이브 영상을 보니 헌병들이 국회의사당 앞에 서있는 모습이 나왔다. 이게 지금이라고?


나는 화들짝 놀랬고, 뇌 회로가 신기하게 어떻게 그렇게 돌아간 건지 모르겠지만 곧바로 코인 가격을 확인하려 했다.



"와 지금 업비트고 빗썸이고 다 안 열려. 이 시간에 전부 다 접속하고 있나 봐."



"Posy야..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 지 잘 모르는구나."



남편이 한숨을 한번 쉬고, 차분하게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시나리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나는 머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별일 안 일어날 것 같은데..



"내가 뉴스 계속 보고 있을 테니까 늦었는데 먼저 들어가서 자. 너 오늘도 바빴잖아."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이 사건은 대한민국 역사뿐 아니라 내 인생에서도 또 다른 파장을 만들었다. 갑자기 정권이 바뀌었고, 예상대로 부동산 가격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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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 갔다가 이런 것도 책으로 나오는 게 신기해서 찍어봤다 (정치적 메세지 전혀 없음)



그맘때쯤 나의 목표는 2025년 7월 전에 집을 사는 것이었다. 7월부터 DSR 스트레스 3단계가 도입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대출 한도는 줄어들고 이자 비용은 매우 늘어날 것임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기회를 놓쳤지만, 그 기회마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새 정부가 자리를 잡으면서 집값은 7월이 되기 몇 달 전부터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7월이 채 되기도 전인 6월 27일에 첫 부동산 규제책이 나왔다. 6·27 대책의 핵심은 대출 한도를 6억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매우 파격적이었고, 심지어 발표 다음날부터 곧바로 시행이라고 했다.



나 같은 실수요자에게는 사실상 기회 봉쇄였다. 이렇게 큰 게 올 줄도 모르고, 스트레스 DSR 3단계 도입이나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답답함이 쌓일수록, 나는 애꿎은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그때 코인 투자로 잃지만 않았어도, 이미 그 돈으로 집 사고도 남았을 거야.”



“왜 그 회사에서는 대출을 안 해주는 거야? 스타트업 크게 키워서 돈 벌어 줬으면 그 정도 직원 복지는 해줘야 하는 거 아냐?"



그때마다 남편은 그저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렇게 말하고 나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차피 현실을 바꿀 수도 없는 데 서로 기분만 상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서울에 집 사려다가, 우리 집이 풍비박산 나겠다.'


우리는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 혼인신고를 미루고 있었다. 물론 아직 아이도 없다. 정확히 말하면 내 집 하나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꼭 그렇게 다 준비하고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누구나 완벽하게 준비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누가 순서를 정해둔 것도 아니고, 둘 다 잘 벌고 잘 사는데 굳이 집을 먼저 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아이를 가지면 더 불안해질 거라는걸. 그래서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집을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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