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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 스퍼트

장바구니 목록: 서울 집 (5년 전 담음)_16

by Posy 포지


남편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프로젝트가 드디어 끝났다. 그동안 그는 평일은 물론 주말 밤낮도 없이 바빴다. 오랜만에 시간이 난 남편은 그 주말 아침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자며, 내가 백화점에 가던 길을 따라나섰다.



나는 평소 혼자 백화점에 가면 무료 커피만 마시고 바로 나온다. 요즘엔 별로 사고 싶은 것도 없다. 온통 마음은 ‘서울 집을 어떻게 마련할까’에만 가 있기 때문이다.



이날 남편은 오랜만에 백화점에 와서 들뜬 기분이었는지 구경을 하자고 했고, 우리는 이곳저곳을 함께 돌아다녔다. 그런데 웬일로 오랜만에 내 눈을 사로잡는 게 하나 있었다. 나는 디올 새들백 앞에 멈춰 섰다.



"나 작은 숄더 백 하나 필요한데.."



나는 평소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생일에는 남편에게 내가 꼭 갖고 싶은 것 한 가지를 선물해 달라고 한다. 1년에 한 번뿐이기 때문에 남편도 내가 고른 건 비싸더라도 꼭 선물해 준다.



내 생일은 한참 남았지만, 남편은 고민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내가 생일 선물 미리 앞당겨서 사줄까? 필요한 거면 일찍부터 쓰면 좋잖아."


꽤 합리적인 생각 같았다. 어차피 생일 선물로 받을 거라면 미리 사서 오래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게다가 내년이면 가격이 또 오를 테니, 지금 사는 게 오히려 이득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540만 원. 새들백이 나온 지 얼마나 오래됐는데, 대체 왜 갑자기 마음에 드는 거야. 핸드폰을 넣고나면 지갑조차 안 들어가는 이 작은 가방이 비싸긴 왜 이렇게 비싼 걸까.



순간적으로 망설였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즉흥적으로 사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만 더 고민해 보고, 그때도 사고 싶으면 말할게."


결국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가방을 사지 않았다.





남편과 평소에 사이가 좋다가도 나는 집 얘기만 나오면 예민해지기 일쑤였다. 남편은 바쁜 일정이 끝났으니, 가족의 최우선 과제를 집 사는 데 두는 것에 적극 동의했다.



남편이 투입된 순간 우리는 무지막지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나의 계획력에 남편의 실행력이 더해져서 엄청난 시너지를 냈다.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임장을 다녔다. 보통 일정은 아침 5시 출발. 평일에는 남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시간에 도착해서 아파트를 한번 다 돌아본 뒤 출근길에 나섰다. 퇴근 후에는 남편이 공인중개사와 미리 약속해둔 장소에서 셋이 만났다.


그 무렵 9·7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일요일에 정책을 발표하다니, 공무원들도 참 고생이다 싶었다.



우리에게 직접적인 타격은 없었다. 하지만 규제책이 나온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집을 못 사게 계속해서 조여온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 발표 이후로 집값은 오히려 더 빠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토요일 점심에 남편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우리는 그날도 예외 없이 아침부터 부동산과 약속을 잡았다. 왕십리 C 아파트를 보고 나서야 결혼식장이 있는 광진구로 향했다.



날씨도 좋았고 결혼식장도 예뻤다. 우리는 식이 끝나고도 주변을 한참 산책한 후에 집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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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을 나와 차를 타고 가는 길,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를 보고 또 지도를 켰다. 나는 평소에도 궁금한 아파트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찾아보곤 했다.


“여긴 뭐지? 한강뷰는 잘 나오겠네.”



그리고 검색창에 뜬 최근 실거래가는 무려 35억. 예상치도 못한 높은 금액에 나는 깜짝 놀랐고, 남편에게 물어보니 원래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오래된 아파트라 커뮤니티 시설 같은 건 없는 데, 대신 거기 사는 사람들은 워커힐 호텔 헬스장 다닌다고 들었어.”


아 그러고 보니 이름부터 워커힐 아파트구나. 내가 아직도 모르는 곳들이 많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다시 아파트 앱을 만지작거리고 있자, 남편이 말했다.


“우리 집 가지 말고 나온 김에 아파트 하나만 더 보고 갈까?”



그렇게 우리는 그렇게 또 저녁 임장을 나섰다. 정장 차림에 원피스를 한껏 차려입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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