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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맨 부동산과 일잘알 부동산

장바구니 목록: 서울 집 (5년 전 담음)_17

by Posy 포지

우리가 들르기로 한 집은 이틀 전에 이미 본 매물이었다. 그 집은 상급지에 있었는데,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아파트들과 비교했을 때 조건이 훨씬 나아 보였다. 꽤 마음에 들어서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집은 마음에 들었지만, 부동산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통 부동산 소장님과 대화하면 어느 정도 티키타카가 되어야 하는데, 전혀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마치 처음 가보는 동네나 아파트인 듯 기본적인 질문마저 전부 집주인에게 그대로 토스해서 물어보는 식이었다.



게다가 바로 옆 단지가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는데, 그런 정보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사장님 대신 와이프가 잠깐 나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꿋꿋이 매물을 알아봐 주겠다고 대답하셨다. 별 기대는 없었지만.



그날 저녁 부동산에서 온 문자는 더 가관이었다. 우리가 물어본 그 아파트를 네이버 부동산에서 검색해 캡처한 화면을 그대로 보내온 것이다. 심지어 다른 부동산 이름이 찍힌 채였다. 이 정도면 거의 X 맨 수준이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런 부동산과 일을 진행하면 얼마나 답답할지 눈에 선했다. 중간에 실수하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높다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래서 우리는 매물을 보여준 그 부동산이 아닌, 다른 부동산을 통해 그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문제는 그 매물이 네이버 부동산상에서는 X 맨 부동산만 등록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부동산에 직접 가보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현장을 다시 찾았던 것이다.



아파트 주변에는 부동산이 즐비했다. 어느 곳에 들어가 볼까 고민하던 중, 남편이 오래돼 보이는 간판 하나를 보고 콕 집어 말했다.



“저기 들어가 보자.”



남편은 문을 열자마자 곧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안녕하세요, 저희 사랑 아파트 OOO동 OOOO 호 찾고 있는데요. 혹시 그 매물 보유하고 계시나요?"



소장님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거기 10년 전에 저희가 계약했던 집이에요. 사장님이랑 어제도 통화했는데,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우리는 여차저차 상황을 설명했다. 다른 부동산을 통해 이미 내부도 보고 집주인도 만났지만, 부동산이 신뢰가 가지 않아 진행하기 힘들어 보인다고. 그래서 혹시 매물을 직접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고 했다.



소장님은 반가운 듯 “잘 찾아오셨다"라며 물었다.



“그럼 계약하실 생각이세요?”



남편은 그동안 배운 걸 바로 써먹었다.



“3000만 원 깎아주시면 계약하겠습니다.”



우리는 그 집이 마음에 들었지만, 실거래가와 호가의 차이가 꽤 컸다. 매도자 우위 시장에서 네고를 요구하는 게 무리일 수도 있었지만, 일단 한번 던져본 것이다.



소장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곧바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저 멀리서 집주인의 씩씩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누가 물어보는 건데요? 우리 집 보고 간 사람이에요? 실제로 보고 나서도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사장님 당황하며) 아 그건 아니고요. 요즘 매물이 귀해서 곧바로 계약하고 싶으신데 자금이 조금 모자르시나 봐요.”



“그래요? 어쨌든 3000만 원은 무슨, 1000만 원도 못 깎아줘요.”



집주인은 단호하게 말한 뒤 끊었다. 부동산 소장님은 지금은 설득이 힘들 것 같으니 오늘은 넘어가고, 내일 아침에 다시 전화해서 집주인을 달래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500만 원이라도 한번 깎아보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알겠다고 하며 부동산 사무실을 나왔다. 부동산 소장님의 빠른 대응과 임기응변에 우리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 소장님은 딱 봐도 '일잘알'임이 틀림없다. 뭔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이미 여러 경험을 통해, 좋은 매물은 눈 깜짝할 새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요즘은 집을 보러 가면 다른 팀과 함께 봐야 했고, 그중에서도 누가 가계약금을 먼저 쏘는지 경쟁해야 했다. 얼마 전에도 퇴근 후에 신촌의 한 아파트를 보러 갔는데, 당일 저녁에 계약 체결이 완료된 일이 있었다.



우리는 그 집이 좋은 매물이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큰돈이 들어가는 만큼 확실한 확인이 필요했다.



마침 그다음 주 주말 나는 송희구 작가님의 강의를 들으러 갈 예정이었다. 두 달 전에 신청해 둔 것이었다. 거기서 송 작가님께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 기다리면 저 매물 없어질 거야. 내일도 어딘가에서 강의 잡힌 거 있겠지? 한번 가보자. 그리고 뒤에 서서라도 듣게 해달라고 부탁드려보자."



그렇게 우리는 무작정 우리의 부동산 구루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EP 17. 현백.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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