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유명인을 부러워하고,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유명해지면 손쉽게 재물을 모을 수도 있고, 명예욕을 충족함에도 유리하며, 선출된 권력을 차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명인이 되면 불편한 점도 적지 않다. 일단 행동의 자유를 잃어버린다.
봉건시대라면 모르겠으나, 첨단기기가 사방에 가득한 요즘에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모든 행동이 영상으로 저장되는 것은 물론 휴대폰 카메라와 차량 블랙박스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이 언제든 SNS 등을 통해 한순간 세상에 공개될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유명인이 되면 거리를 걷는 것,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것 등 일반인이 부담 없이 행하는 사소한 일상조차 편히 누릴 수 없다.
마크 트웨인의 작품 『왕자와 거지』를 보면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 지내는 게 얼마나 갑갑한 삶인지를 엿볼 수 있다.
모든 이의 축복 속에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왕자가 헨리 8세의 아들로 태어나던 날 런던 뒷골목에서는 톰이라는 소년이 술주정뱅이 거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우연히 왕궁 주변에서 비를 피해 돌아다니는 톰을 보게 된 에드워드는 그를 안쓰럽게 여겨 왕궁으로 불러들였는데, 놀랍게도 두 소년은 똑같이 생겨서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왕궁에서 시종들에게 둘러싸여 아침부터 밤까지 짜인 틀 속에서 인형처럼 따분하게 살고 있던 에드워드의 꿈은 런던 거리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노는 것이었고, 톰의 꿈은 화려한 궁전에서 멋지게 사는 왕자가 되는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톰과 옷을 바꾸어 입고 한동안 거지 생활을 하는데,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자유에의 동경’이었다. 작품 속에서 에드워드는 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네 옷을 입고 나가 신발을 벗어 던지고 잔소리할 사람 없는 데에서 실컷 진흙탕에 뒹굴 수만 있다면 왕이 못되어도 좋겠다!”
뭇사람의 지나친 관심으로 스스로 마음의 감옥을 지어 그 안에서 우울한 여생을 보내야 했던 유명인이 있었다. 달 표면에 인류의 첫발을 내디딘 아폴로 11호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이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무사히 달 착륙에 성공하자 전 세계 언론들은 ‘우주를 향한 인류의 위대한 첫걸음’, ‘우주의 신비를 푸는 중요한 출발점’ 등 찬사를 쏟아냈고, 아폴로 11호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마이클 콜린스・버즈 올드린 등 3인은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되었다.
올드린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달 탐사를 끝내고 귀환하자 세상은 우리를 격찬했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런 상황에 무방비 상태였다.
우린 그저 과학자이자 전투기 조종사에 불과했는데, 갑자기 대스타가 되었고,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 버거운 상황이 전개되었다”고 술회하였다.
그런데 유난히 언론의 집중적 조명을 받은 사람은 가장 먼저 달에 착륙한 암스트롱이었다.
그는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남들 앞에 나서는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달 탐사 이후 그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취재 열기는 그를 아예 염세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암스트롱은 마주치는 사람마다 자신을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는 것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고, 아폴로 11호 달 착륙 25주년인 1994년에는 사인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으며, 이후 그의 사인은 경매시장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대인기피증이 심해질수록 세상은 더욱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고, 급기야 그의 머리카락이 3천 달러에 거래되는 일조차 발생하자 암스트롱은 격분하여 단골이발소에 발길을 끊었다.
과도한 유명세로 힘들어하던 암스트롱은 대인 기피증이 갈수록 심해져 부부관계도 파탄을 맞게 되었고, 이후 찾아온 우울증으로 힘들어했으며, 급격한 건강 악화로 몇 차례 심장 수술을 받는 등 힘든 노년을 보내다가 2012년 고향인 오하이오의 인적 드문 작은 농장에서 82세를 일기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유명인으로 사는 것의 불편함도 그렇지만, 단지 유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논이 살해당한 것은 그가 세계적 팝스타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1980년 12월 8일 오후 10시 50분 뉴욕 맨해튼 다코다 빌딩 입구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 경찰 당국은 존 레논이 그의 열혈 팬인 마크 채프먼의 권총을 맞고 병원으로 이송 도중 숨을 거두었다고 발표했다.
레논은 언제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긴 시간을 기다리는 팬들에게는 사인과 사진 촬영에 기꺼이 응해주었는데, 이를 잘 알고 있던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온 25세의 청년 채프먼은 그날 아침부터 권총을 휴대한 채 다코타 빌딩 밖에서 레논을 기다리고 있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채프먼은 2급 살인죄로 기소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수감생활을 하고 있으며, 2000년부터 2년마다 가석방 청원을 내고 있으나, 모두 부결되었다.
9세 때부터 비틀즈의 팬이었던 채프먼이 레논을 살해한 동기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그가 정신병 증세로 두 차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는 것과 유명해지고 싶다는 망상에 빠져있었다는 주변의 증언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유명인을 살해하면 유명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채프먼은 후에 지인을 통해 존 레논을 죽인 것으로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고백했으며, 결과적으로 그는 유명 인물이 되었다.
유명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누구나 한 번쯤 가지겠지만, 실력으로든 운으로든 일단 유명해진다면 그 후부터는 평화롭게 사는 것을 애당초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그저 그런 갑남을녀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 복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