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관객들은 오래지 않아 누가 주인공인지를 알 수 있다.
주인공은 언제나 말수가 적고,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위기가 닥치더라도 흔들림이 현저히 없고, 냉철한 이성으로 해결책을 찾아내어 적게는 가족을 구하고, 크게는 나라와 인류를 구한다.
흥밋거리로 잠시 접하는 이야기에서조차 감정에 흔들리는 사람이 주인공이 못 되는 것은 그런 사람이 세상을 주도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분노’가 인간의 기본적 감정인 ‘희노애락(喜怒哀樂)’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이처럼 버려야 할 감정쯤으로 치부되는 이유는 분노가 초래하는 폐해가 너무도 크고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불의에 대항하여 떨쳐 일어서는 공적 분노는 거악을 척결하거나 역사적 진보를 이루어 내지만, 개인 간 영역에서 발생하는 사사로운 분노는 자기 패망의 원인만을 제공할 뿐이다.
그런 이유로 공적 분노를 일으키면 정치지도자가 되거나 적어도 의사(義士)・열사(烈士)로 남게 되지만, 사적 분노를 일으키면 필연코 신상에 해를 입거나 운이 따르지 않으면 범죄자로 전락한다.
진(秦)나라 말기의 인물인 장이(張耳)와 진여(陳餘)의 짤막한 아래 일화는 사적 분노가 얼마나 위험하고 부질없는 것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진(秦)나라는 위(魏)나라를 멸망시킨 후 위나라의 명사로 알려진 장이와 진여를 찾기 위해 장이에게 1천 금, 진여에게 5백 금의 현상금을 걸었다.
두 사람은 이름을 바꾸고 진(陳)나라로 가서 마을의 문지기 노릇을 하며 숨어 지냈는데, 하루는 진여가 사소한 일로 고을 관리에게 매를 맞으며 모욕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자존심이 강했던 진여는 이를 참지 못하고 관리에게 달려들어 대응하려 했으나, 곁에 있던 장이가 진여의 발을 밟으며 극구 말렸다.
관리가 가고 난 후 장이가 진여를 뽕나무 아래로 데려가 꾸짖으며 “작은 치욕을 참지 못하면 큰일을 그르치는 법이요. 이만한 일로 하찮은 아전바치에게 목숨을 내던질 작정이요?”라고 말했다.
소소한 분노를 억제한 탓에 후일 이들은 제후나 장수로 역사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미국의 유명 작가 마크 트웨인은 심한 분노조절 장애를 앓고 있었다.
갑작스럽고 폭발적이며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자신을 통제하기 어려웠던 그는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누군가에게 화낼 일이 생기면 그 당시 솟구치는 감정을 그대로 편지에 적어 서랍 속에 3일간 보관했다가 다시 읽어서 편지내용이 정당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그에게 보내고, 그렇지 않다면 찢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이후 누구도 마크 트웨인의 분노에 찬 편지를 받아본 사람이 없었다고 하니, 분노의 마음으로 행하려는 것이 단 한 번도 옳지 않았음을 마크 트웨인도 인정한 것이다.
『손자병법』에 ‘주불가이노이흥사 장불가이온이치전(主不可以怒而興師 將不可以慍而致戰)’이라는 말이 있다.
군주는 노여움에 사로잡혀 군사를 일으켜서는 안 되고, 장수는 분노로 전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치밀한 사전 준비 없이 격분한 상태에서 시작한 전쟁이 좋은 결과로 연결될 리 없는 것처럼 스포츠 경기에서도 어느 일방이 흥분하면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격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고, 그런 상태로는 평소의 기량을 절대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생 내내 ‘인내’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살았던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다음과 같은 말로 분노로부터 자신을 지켜냈다.
“화가 나면 무엇인가 말하기 전에 열까지 세라. 그래도 화가 가라앉지 않으면 백까지 세라. 그래도 가라앉지 않으면 천까지 세라.”
살아서는 여러 공직과 두 번의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죽어서는 러시모어산에 큰 바위 얼굴로 새겨지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자어 忍(참을 인)은 刃(칼날 인)과 心(마음 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풀이하면 가슴에 칼날을 품고 있다는 뜻이 된다.
즉 ‘참는다’는 것은 칼날을 가슴에 품고 있는 고통을 의미할 정도로 견디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당서(舊唐書) 효우열전에 당나라 고종 때 사람인 장공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장공예의 집안은 9대를 이어오며 수백 명의 자손들이 한 집에 모여 살면서도 한 번의 분쟁 없이 평화롭게 살았는데, 이를 가상히 여긴 고종이 태산에서 천신과 지신에게 제사를 모시는 봉선 의식을 치른 후 장공예를 치하하기 위해 그의 집에 들렀다.
고종이 장공예를 불러 오랜 세월 동안 각 세대 수백 명의 일가가 한 집에서 화목하게 지내는 비결을 물었더니, 장공예가 말하는 대신 ‘忍’ 100자를 써서 올렸다.
고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공예를 치하하고 포상을 내리고는 화목의 지혜는 참는 것에 있음을 주위에 일깨웠다고 한다.
최근 미국 「순환(Circulation)」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단 한 번의 분노만으로도 심장병이 올 수 있다고 한다.
연구팀은 52개국 12,461건의 심근경색 사례분석을 통해 14.4%가 흉통 증상 1시간 전에 분노가 있었고, 분노한 사람은 대조군과 비교했을 때 급성 심근경색 발병률이 2.4배나 높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심장 건강을 위해서라도 갑작스러운 분노를 자제할 것을 조언했다.
화를 낸 후 2시간 이내에 심장마비는 5배, 뇌졸중은 3배 올라간다는 하버드대 공공보건 연구 결과도 있다.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저 화를 냈다는 사실만으로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비자(韓非子)는 “윗사람은 마음을 평정하게 하고 지나치지 않도록 하여 결코 감정에 치우쳐 일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실패하는 원인은 대개 감정에 따라 일을 결정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평정심을 잃은 상태에서 내리는 결정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으며,
사마천(司馬遷)은 천하 제패에 군주가 지켜야 할 덕목으로 “욕심을 버릴 것, 분노하지 말 것, 조급히 서둘지 말 것” 등 세 가지를 제시하면서 “욕심이 많으면 잃는 것이 많고, 분노할수록 일은 어려워지며, 서두를수록 실패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분노의 언덕을 넘어서면 후회의 벼랑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분노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분노에 같은 분노로 대응하는 것만큼은 절대 피해야 한다.
특히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쏟아내는 분노에는 일체의 대응을 삼가야 하며, 격정의 폭풍이 내면에 몰아치더라도 호흡을 고르고 정신을 가다듬어 마지막 순간까지 자제의 고삐를 당겨야 한다.
모욕을 받고도 분노하지 못하는 사람은 수치를 모르는 것이나, 분노를 느끼면서도 그것을 참아내는 사람은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