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외양보다 내면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내면이 외부로 표출되지 않는 한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사회적 의미도 가질 수 없다.
기회가 된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라. 본인이 알고 있는 ‘나’와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나’가 같지 않음을 종종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실체와 현상은 전혀 별개일 수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이미지 관리를 위해 내키지 않는 일을 어쩔 수 없이 자주 한 것임에도 그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거나, 평소 하고 싶은 것임에도 부정적 평가가 두려워 꺼리는 것임에도 그런 것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따위가 그렇다.
행동은 내면의 표현이라고 여기기 쉬우나, 외양에 의해서도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
영국의 한 연구기관에서 노숙자의 외모를 말끔하게 다듬어 주고 멋진 양복을 입혔더니, 마치 예전부터 신사였던 것처럼 행동했다는 실험결과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외양이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7년 덴마크 오르후스대와 미국 뉴욕대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건장한 체격일수록 공격성이 강하고 두려움을 잘 느끼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하며, 독일 괴팅겐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근육의 발달이 좋고 육체의 힘이 강한 남성일수록 외향적인 경향을 가지며, 근육질의 남성일수록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한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경남중학교 시절 책상에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란 글씨를 써 두고 자신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대통령이 되리라 생각했다면 그런 다짐을 가슴에 묻어두고 꾸준히 노력하면 될 것을, 굳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그런 문구를 적어두고 닿도록 바라볼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만, 그것 또한 외양을 통해 내면을 다잡으려는 방법이라 할 것이다.
노동운동을 하는 근로자들이 머리에 ‘단결! 투쟁!’의 문구가 적힌 띠를 머리에 두르고 단체행동을 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이다.
제품의 판매량을 높이려면 좋은 품질 외에 적절한 광고가 따라주어야 하듯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다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외양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어떤 조직에서 구성원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있다면 그럴 자격이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 그는 분명 자기 포장에 능한 사람이다.
사람의 품격은 드러나지 않는 내면보다 세련된 복장, 유려한 언변, 풍부한 교양, 격조 있는 매너 등과 같은 외양에 의해 결정되므로 외양을 멋지게 꾸미는 사람은 내면의 실상과 무관하게 주변의 이목을 끌고, 근사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래서 자기관리에 능한 사람은 비록 자신이 오만하고 잔인하며 편벽되더라도 겸손하고 자애로우며 균형감을 지닌 양 처신한다.
이런 이유로 전쟁사에 불멸의 이름을 새긴 장수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껍데기 분칠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들은 낮은 자세로 부하들과 똑같이 생활하면서, 달콤한 칭찬과 격려로 자비로운 이미지를 부하들에게 각인시켜 자기에게 목숨을 바치도록 집단 최면을 걸었다.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왕족이자 정치인으로 진(秦)・제(齊)・위(魏)의 재상을 역임했던 맹상군(孟嘗君)은 일상의 외양을 잘 관리하여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존경을 끌어냈다.
맹상군은 천하의 인재를 모아 후하게 대접하는 인물로 그 이름이 높았다.
제나라 왕도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한 마디에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식객만도 수천을 헤아렸다.
어느 날 그가 식객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하인이 등불 앞에 있어서 맹상군이 있는 방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본 한 식객이 맹상군이 음식에 차별을 둔 것을 감추려는 것으로 추측하고, 수저를 놓고 물러가려 했다.
이를 본 맹상군이 자신의 상을 그 식객에게 직접 가져가 음식에 차이가 없음을 보여 주자 식객은 자신의 경솔함을 부끄러워하며 칼로 제 목을 찔러 자결했고, 그 사건이 세상에 전해지면서 맹상군의 인품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이는 맹상군이 어떤 식객도 차별을 느낄 수 없도록 자신의 외양을 철저히 관리하였기 때문인데, 그런 것들로 인해 식객 개개인은 하나 같이 자기 혼자만 맹상군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27년간 권력의 이인자로 군림하면서 죽는 날까지 청렴과 검소로 외양을 잘 꾸민 덕에 오늘날까지 중국 인민들의 가슴에 존경과 그리움을 남겨놓은 인물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 총리인 저우언라이(周恩來)이다.
저우언라이는 가장 열렬한 공산주의자였으면서도 마오쩌둥의 관념적이고 급진적인 정책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특히 문화대혁명 때 많은 문화유적지를 홍위병의 파괴로부터 보호하였으며, 숙청 인사들을 감싸주었던 따뜻한 인민의 어머니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단 한 벌의 인민복으로 생활할 만큼 청빈을 실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총리 시절 외국 방문 중 셔츠가 뜯어져 대사관으로 수선을 보낸 일이 있었는데, 목 칼라와 소매가 닳아 몇 번이나 그 부분만 수선하여 입었던 흔적이 여실하여 그것을 본 사람들이 놀랐다고 한다.
그의 아내 덩잉차오(鄧穎超) 역시 죽음을 앞두고 평소 자신이 즐겨 입던 검은 옷으로 수의를 해달라고 당부하였는데, 간호사가 시신에 수의를 입히려고 그 옷을 보니, 속을 세 번이나 기웠고, 바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기운 흔적이 많아 바느질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게다가 저우언라이가 죽은 후 남긴 돈이 우리 돈으로 70만 원 정도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그를 향한 중국 인민들의 존경은 극에 이르렀고, 평소 의심이 많아 수많은 혁명 동지들을 숙청한 마오쩌둥조차 “저우언라이는 사리사욕이 전혀 없었고, 순수하고 도덕적이었으며, 인민 해방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헌신한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지금도 천안문 광장에는 저우언라이를 추도하는 시비가 세워져 있으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인민의 총리로 인민이 사랑하고, 총리와 인민이 동고동락하며, 인민과 총리의 마음이 이어졌다.”
『맹자(孟子)』에 ‘견우미견양(見牛未見羊)’이라는 말이 있다. 소는 보고 양은 보지 못했다는 뜻으로 보지 않은 것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고 들은 것에 대하여 한층 더 생각하게 된다는 의미이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순행을 하는 도중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를 보게 되었는데, 그 소의 모습을 측은히 여기고는 소를 놓아주고 양으로 대신하라 명했다.
소나 양이나 죽는 것은 별 차이가 없으므로 어느 것을 중히 여길 합리적 이유도 없었으나, 단지 왕의 눈에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짐승이 바뀐 것이다.
한비자(韓非子)는 “마음속에 상대에 대한 경의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상대는 그것을 알 수가 없으므로 상대의 모습이 보이면 급히 달려가서 인사를 한다든지 혹은 몸을 굽혀 경의를 표한다든지 하여 공경하는 마음이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라고 하여 외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적어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외양에 무심하지 말아야 한다.
형편없는 인물이라도 외양 관리에 능숙하면 근사한 인물이 될 수 있으며,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라도 외양 관리에 소홀하면 흙을 덮어쓴 진주로 머물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