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를 넘긴 우리나라 원로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100년을 살아보니』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60세부터 75세까지가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했다.
늙어갈수록 명성도 높아지는 인물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지만, 아마도 일반인들은 청장년 시절을 인생의 황금기라 여길 것이다.
늙어 기력이 쇠약해지면 넘치는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누릴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노년과 청춘에 별 차이가 없는 것인 양 말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2018년 5월 10일 12시 30분 호주의 과학자 데이빗 구달 박사는 “나의 삶이 악화하고 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존엄한 죽음을 택하겠다”며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 바젤로 건너가 진정제와 신경안정제 등이 들어있는 주사를 투여받고 10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호주의 저명한 식물학자이자 생태학자였던 구달 박사는 1979년 은퇴 이후에도 연구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100세가 넘은 나이에도 컴퓨터를 직접 다루고 논문을 발표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였으며, 2016년에는 『세계 생태계』라는 제목의 30권짜리 시리즈를 편집한 공으로 호주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랬던 그였지만 100세가 넘어가면서 몸의 기능이 쇠퇴하여 쉼 없이 고통이 찾아오자 물리적 생의 연장이 의미 없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한 것이다.
죽음을 위해 호주에서 스위스로 가는 도중 인터뷰에 응한 그는 행복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 나는 죽기를 원한다”고 힘겹게 대답했다.
청춘을 찬미하는 글과 노래는 세상에 넘쳐나지만, 청춘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인지는 청춘을 잃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스위스의 작가인 우스테리는 “확실히 젊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존재하며, 또한 많이 있다. 젊은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지난날을 후회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도록 가능하면 젊을 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라. 램프가 아직 불타고 있는 동안에 인생을 즐겁게 보내라. 장미꽃이 시들기 전에 그것을 따라”며 청춘의 아름다움을 역설하였지만, 그 역시 이미 청춘이 저 멀리 사라진 후에야 그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면 노인들은 왜 청춘을 향기롭다고 말할까?
빠듯하게 남아있는 여생의 안타까움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노년에 찾아오는 육신의 고통 때문일 것이다.
‘건강수명’이라는 말이 있다. 평균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활동하지 못한 기간을 뺀 기간을 의미한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녀 평균수명은 81.8세이고, 건강수명은 73세로 평균 10년 가까이 병을 앓거나 아픈 상태에서 여생을 보낸다.
건강수명 이후의 여생을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삶’을 의미한다고 볼 때 돈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있더라도 그 기간의 삶은 사실상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인 셈이다.
‘노후 대비’가 요즘 젊은이들의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이른 나이부터 노후를 준비해야 든든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 꽃다운 시절을 일에 파묻혀 지낸다고 어느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마는, 노후에 누릴 수 있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은퇴하여 나름 노후를 즐기고 있는 분들을 만나보면 금세 알 수 있듯 여행을 다니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고, 맛난 음식을 먹으려 해도 치아가 따라주지 않는다고 한다.
행복 설계의 기준점을 노년으로 삼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이다.
몇 해 전 우리나라 모 일간신문 건강 칼럼에서 한 의학자가 노후에 꼭 필요한 세 가지로 ‘돈・친구・관절’을 들면서 돈이 없는 노후는 비참 그 자체이고, 친구는 고독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며, 관절은 최소한의 옥외활동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너무나 당연하고 수긍이 가는 말이지만, 마지막 항목은 다소 서글프다. 노년의 삶은 ‘누리는 기간’이 아니라, ‘버티는 기간’에 가깝다는 말이다.
노년이 되면 몸이 아플 때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재산, 고기를 씹을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치아, 인근 공원을 산책할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체력만 있으면 되니, 노후를 대비한다는 이유로 굳이 고난을 자처하며 아름다운 시절을 황량하게 보내지 말고, 젊은 시절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 정도껏 누리며 살아야 한다.
인생은 짧고 청춘은 더욱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