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이 두려워진 어른들에게
며칠 전 남편과 ‘회복 탄력성’이라는 단어에 꽂혀 한참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많은 화두가 되었던 회복 탄력성. 과연 이것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의지일까.
아니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강한 마음일까.
회복 탄력성이라는 단어 안에는 분명 이 두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성향을 곰곰이 떠올려보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지닌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그렇다.
사회에서 일을 하다 보면 우리는 점점 업무와 관계를 조심스럽게, 그리고 소극적으로 대하게 된다.
특히 공공기관처럼 안정이 미덕이 되는 조직일수록, 일을 발굴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보다는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처럼 여겨지는 장면을 수없이 보아왔다.
즉, 직장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사린다’.
(조금 거북하게 들릴 수 있는 표현이지만)
물론 이건 내 방식의 해석일 뿐, 사실 그런 태도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생존 전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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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보면, 정작 어린 성장기 때에는 사회나 학교로부터 ’진취적으로 살아라‘ 가르침을 받아온 것 같다.
직접 부딪혀 보고, 필요하다면 ‘yes’가 아닌 ‘no’를 말할 수 있는 용기,
자기 신념을 드러내는 태도가 멋지다고들 말이다.
스무 살 중반에 다다라 사회 초년생이었던 필자는, 그 때까지는 그런 용기에 한껏 취해 있었다.
멋도 모르는 신입사원이 팀장에게 덤비듯 의견을 내보기도 했고,
본부장 간담회에서 손을 들고 바른 소리랍 시고 대담한 발언을 하기도 했으며, 회사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자주 호스트를 자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온 것은
“쟤는 너무 튄다”,
“여자가 나댄다”는 말,
혹은 다른 방식의 험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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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5년쯤이 흘렀다.
여전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2026년의 한국 사회 조직 문화 역시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변한 것인지, 내가 맞춰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를일이나 - 한가지 분명한 건 이제는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무게가 얹어졌다는 것이다.
일과 가정, 책임져야 할 대상과 범위가 늘어난 지금,
무언가에 새롭게 도전하고 리스크를 짊어진다는 선택은 어쩌면 또 다른 무책임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회복 탄력성’은 용기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 강하게 믿는다.
환경이 불확실할수록 ‘도전’과 ‘신념’만이 살아 남는다.
그리고 이건 오직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의지의 영역이자 특권일 것이다.
도전과 추진 끝에 얻는 단 한 번의 짜릿한 성공은 다음 도전을 향한 강력한 동기가 되고,
동시에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는 단단한 토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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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이들 만큼은, 가능하다면 어릴수록 실패를 통해 배우고,
아흔아홉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해내는 경험의 ‘모수’를 많이 쌓았으면 한다.
환경이 불확실하든, 그 성공이 의지의 결과이든 우연히 찾아온 운이든 상관없이,
어쨌든 한 번이라도 ‘내가 해봤더니, 성공을 했다’라는 짜릿한 성취의 기억은
옆을 재지않고도, 언제나 나의 의지와 도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자신감이 되어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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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현상을 유지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그래야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고, 그 책임이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올 확률도 줄어들 테니까.
하지만 세상은 결국 사람과 사람간의 얽힘이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결과를 확률로만 단정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용기와 경험, 그리고 그날의 의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아직은 불확실하고도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다.
꽤나, 재미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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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란다.
적어도 아직 마음이 몽글몽글한 아이들만큼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장 안전한 방법만을 찾아가는 길을 너무 쉽게 택하지 않기를.
오히려 실패해도 괜찮고, 나만의 경험과 성공의 기억으로서 다시 일어나는 그 마약같은 기억을 가지고
모든 선택을 너무 일찍 내려놓지 않기를.
조심보다 호기심을, 회피보다 한 번의 시도를
조금 더 오래 품고 살아가기를.
그게 결국, 이 불확실한 세상을 자기 힘으로 통과해 나갈 수 있는
가장 단단한 힘이 되어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