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으로서의 교실
“선생님, 지우개 좀 빌려주세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말 대신 다른 말이 더 자주 들린다.
“선생님, 수정테이프 있으세요?”
시대가 바뀐 걸까? 지우개에서 수정테이프로. 아니, 요즘은 아예 “그냥 줄 그어도 돼요? “라고 묻는 아이들도 있다. 실수를 대하는 방식이 이렇게 다양할 줄이야. 당신은 실수를 어떻게 처리하는 편인가?
‘지우개 장인’들이 있다. 이들에게 지우개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예술 도구다. 틀린 글자만 정교하게 지운다. 지우개 모서리의 날카로운 부분을 이용해 한 획 한 획을 조심스럽게 지워낸다. 주변 글자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지우고 난 후에는 지우개 찌꺼기도 입으로 '후' 불거나 손으로 정성스럽게 털어낸다. 이들에게 실수는 '없었던 일'로 만들어야 하는 대상이다.
‘수정테이프족’은 다르다. 틀리면 바로 테이프를 붙인다. 깔끔하고 빠르다. 지우개처럼 문지를 필요도 없고, 종이가 상할 걱정도 없다. 그 위에 다시 쓰면 끝. 하지만 가끔 수정테이프가 벗겨질 때가 있다. 그럼 또 붙인다. 겹겹이 쌓인 수정테이프는 마치 고고학 발굴 현장의 지층처럼 보인다.
어느 날 한 학생의 공책을 보니 수정테이프가 열 겹도 넘게 붙어 있었다. “야, 너무 자주 고치는 거 아니야?” 했더니 그 아이가 대답했다. “선생님, 완벽하고 싶어서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실수를 대하는 태도에 그 사람의 세계관이 담겨 있구나. 흔적을 완벽히 지우려는 시도는 과거를 부정하려는 욕구일까, 아니면 현재에 대한 예의일까?
‘쿨가이족’은 그냥 줄 긋는다. 두 줄로 쫙 긋고 옆에 다시 쓴다. “뭐 어때, 사람인데 실수할 수도 있지.” 이런 마음가짐이다. 이들의 공책을 보면 여기저기 줄 그어진 글자들이 있다. 어쩐지 솔직해 보인다. 실수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실수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과오를 인정하는 정직함일까, 아니면 무신경함일까?
‘괄호족’도 있다. 틀린 글자를 괄호로 묶고 옆에 올바른 글자를 쓴다. 체계적이다. 나중에 보면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알 수 있다. 학습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들은 실수를 '데이터'로 활용한다.
'태블릿 유저'들은 또 다르다. 실행 취소 버튼 한 번이면 끝. 깔끔하다. 흔적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어쩐지 아쉽다. 그 고민의 흔적이 사라져 버리니까. 실수를 통해 배울 기회마저 너무 쉽게 지워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든다.
실수를 대하는 방식을 보면 그 아이의 인생관이 보인다. 완벽을 추구하는 아이, 과정을 중시하는 아이, 결과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 어떤 방식이 더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선택이 모여 그 사람의 역사가 된다. 이처럼 사소한 필기 습관에서 한 인간의 태도를 읽어낼 수 있기에, 손글씨를 통한 인간 탐구는 의미 있어진다.
어떤 아이들은 실수를 부끄러워하며 숨기려 한다. 완벽하게 지우고, 완벽하게 덮는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실수가 부끄러운 게 아닌데.
반대로 어떤 아이들은 실수를 당당하게 드러낸다. “봐, 나도 틀릴 수 있어.” 하는 마음인 것 같다. 이런 솔직함이 때로는 더 매력적이다.
한 번은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왜 실수를 고치면 안 돼요?”
그 질문에 나는 답했다. “고치는 게 문제가 아니야. 실수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지.”
실수는 누구나 한다. 중요한 건 그 실수를 어떻게 대하느냐다. 숨기려 하느냐, 인정하고 고치려 하느냐, 아니면 그냥 넘어가느냐. 지우개든 수정테이프든 줄 긋기든, 모두 실수와 화해하는 방법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오늘도 교실에서는 스물 몇 가지 다른 방식으로 실수들이 정리되어 간다. 그리고 그 모든 방식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