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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un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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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새벽 공기가 여름의 열기에 벌써 녹아 눅눅하게 흐르고 있다.     


고요한 길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한 가게 앞 풍경.

길게 늘어선 줄이 그릇 밖으로 삐져나온 면발 같다.     


가게 문이 열리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두 시간.

저마다 휴대전화를 보거나 책을 보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     


드디어 매장 안에 불이 켜진다.

사람들이 술렁거리고 듬성듬성 늘어져있던 줄이

순식간에 촘촘해지면서 빈틈이 사라진다.     


사람들의 몸에 힘이 들어가고

달아오른 분위기가 주변을 팽팽하게 긴장시킨다.     


문이 열렸다.

작은 문이 사람들을 쭉쭉 빨아들인다.

먹방에서 보던 면치기를 보는 듯하다.     


미애는 환갑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잽싸다.

상옥은 서른이지만 조금 굼뜨다.     


미애는 상옥보다 뒤에 있었고,

상옥은 미애보다 10명 정도 앞에 있었다.     


하지만 둘의 거리가 좁혀지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나의 가방.

동시에 다다른 두 명의 손.     


마주한 두 명의 눈에서

굶주린 맹수의 광기가 뿜어져 나온다.     


제가 먼저.

아니요. 제가 먼저.     


가방을 가운데 두고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어른한테 양보를.

여기서 어른이 왜 나와요?     


친한 친구 선물이라서.

전 엄마 생신 선물이에요.     


곧 끊어질 것만 같은 손잡이가

두 명의 힘을 간신히 버티고 있다.     


가위바위보.

가방이 망가지기 전에 두 명은 ‘가위바위보’를 했다.     


젊은 상옥의 승리.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가는데

못내 아쉬운 미애가 뒤따라 나온다.     


상옥이 제안한다. 정가에서 30만 원 더 주시면 팔게요.

엄마 생신 선물이라면서요? 미애가 묻는다.

엄마한테 너무 비싼 가방은 안 어울려요. 상옥이 답했다.     


여름보다 가을에 조금 더 가까운 계절.

두 명의 중년 여성이 카페에 앉아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약속 시간에 늦은 젊은 여성이 그들에게 다가간다.     


우리 딸 왔어? 여긴 내 30년 지기 친구. 서로 인사해.     

상옥은 엄마 무릎에 있는 그 가방과 미애를 번갈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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