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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un 27. 2022

먹잇감

신기한 일이었다.

제법 빠른 속도로 지나치고 있었는데도 그를 한눈에 알아보다니.

어쩌면 마음 한 구석에 그를 향한 애틋함이

김밥을 먹고 난 후 어금니에 낀 시금치처럼 남아 있었나 보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얼굴 대부분을 덮고 있었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두터운 외투에는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었고,

먼발치에서 보는데도 악취가 코를 찌르는 것 같았다.     


차를 세우고 찬찬히 관찰을 시작한다.

지하철역 입구에 무턱대고 차를 세우면 보통 뒤에서 난리가 날 법도 한데,

역시 한정판 ‘벤츠 AMG G 63’이 돈 값을 한다.     


두 명의 노숙자가 벽에 기대앉아 소주를 나눠 마시고 있다.

한 모금 씩 번갈아서.

안주는 없다.

병을 잡은 손에 검게 낀 때가 속을 거북하게 만든다.     


고작 2년 만에 사람이 저렇게 바뀌다니.

나와 만나던 시기만 해도 제법 잘 나가는 벤처 사업가였다.

잘생긴 얼굴에 세련된 말투와 늘씬한 근육질 몸매까지 완전 일품이었는데.

겨우 20억 때문에 저렇게 된 것일까?

가끔 그와 함께했던 밤을 그리워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름이 돋는다.     


룸미러로 내 얼굴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매번 작업이 끝나면 대대적인 공사를 한다.

거울 속의 나에게서 2년 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지갑에서 만원을 꺼냈다.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다가간다.

바람에 날리지 않게 지폐를 두 번 접는다.

우리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빠르게 뛴다.     


무심한 척 만원을 툭 던졌다.

그들은 이미 마지막 한 모금을 끝내고 

벽에 붙어 있는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먹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만원을 본 그들 눈에 살기가 돈다.

사이좋게 나눠 마시던 병을 내던지고 누구랄 것 없이

먼저 잡기 위해 서로를 밀쳐낸다.     


그가 졌다.

더러운 울상이다.

뭔가 미안하다.

나는 너무 감상적이다.

동정심과 연민이 쓸데없이 넘친다.     


등 뒤로 고맙다는 인사 소리가 연신 들린다.     


차에 올라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문자가 왔다.

이번 호구는 진짜 월척이다.

30억을 내 계좌로 입금했다고 하면서

온갖 애교가 담긴 이모티콘을 함께 보냈다.

사랑한단다. 나를. 영원히.     


차에 시동을 걸자

우렁찬 배기음이 주변을 흔든다.

이마에 걸쳐놨던 선글라스를 내려 햇빛을 가린다.

이번 작업도 성공이다.     


노숙자 두 명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곧 세 명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자

웃음을 참을 수 없다.     


단골 성형외과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았다.

여기서 더 예뻐지면 곤란한데.

수첩을 꺼내서 다음 먹잇감을 확인한다.     


조수석 문이 확 열린다.

그가 내 옆에 앉자 온갖 냄새가 차를 가득 채운다.

입을 열자 경악할 수준이다.     


하지만 냄새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여진, 오랜만이다. 언제쯤 나 알아보나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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