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호 May 10. 2023

직업윤리와 Fan심의 부조화


그들은 나를 선택할 권리가 있지만

나는 그들을 외면할 인권이 없다.


요구를 하면

어떠한 상황이든 간에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요즘에는

No Kids Zone

No Pet Zone

No Senior Zone

등등도 있다고 하던데.


'목구멍이 포도청'과

'배부른 소리'라는

상반된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거나

팔이 문신으로 도배된 사람은 

내 택시에 태우기 꺼려지지만 

그러한 마인드는

프로의식이 부족함이고

직업윤리에 위배된단다.


'승객 윤리'는 왜 없는 걸까?

서비스직종이라면 군말 없이 감내해야 하는

너무 일방적이고 숙명적인 처사라

가끔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나도 운전석에서 내리면

잠재적인 고객이다.


그래,

만취자나 깡패까지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니 

백번 양보한다.


하지만 진짜 태우기 싫은 사람이

지금 바로 앞에서 

나와 내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호출 서비스를 이용했으니

저렇게 손도 들지 않고 여유 있게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출처 : Pixabay


손님이 타는 순간 분위기를

냉랭하게 바꾼다.


웃지 않고 무뚝뚝하게

인사와 함께 목적지를 물었다.


콜을 확인하고 잡았으니

목적지는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야 귀찮아하겠거니 한다.


일부러 돌아서 간다.

하지만 티가 나서는 안 된다.


요철을 지나며

앞바퀴는 살살

뒷바퀴가 걸릴 때는 액셀을 밟는다.


제한 속도보다 살짝 천천히 간다.

역시 눈치를 채지 못하게.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방귀를 뀌고 모른 척한다.


기분이 나쁘지 않을 정도에서

말을 살짝 놓는다.


실수인 양 뒷좌석 창문을 연다.

이 차종은 처음이라고 핑계를 곁들인다.


신호가 애매하면 무조건 선다.

안전 운전이 최우선이라면서.


쌀쌀하지만 살짝 에어컨을 튼다.

앞자리 송풍구는 막는다.


잠깐 조는 것 같아서

급브레이크 몇 번 밟아줬다.


왼손 약지에 반지가 보였지만

여자 친구 없냐고 물었다.


조금 전에

감히 'SSG'의 에이스 투수를 바르고

대 역전승까지 한

그 빌어먹을 팀의 유니폼을 입고

뻔뻔하게 내 택시에 타다니.


이건 누가 뭐라 해도 어쩔 수 없는

나만의 신념이다.


소심한 복수를 계속 이어간다.


전화 통화를 하길래

라디오 볼륨을 조금 더 키웠다.


일부로 목적지에 살짝 못 미치게 세운다.

교통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

그랬다는 듯이.


꺼져 가는 횡단보도 초록 신호를 보며

아쉬워하는 모습에서

작은 희열을 느낀다.


카드를 내밀며

녀석은 친구와의 통화를 이어간다.


“야, 그니까 완전히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 여자 친구 때문에 SSG 응원도 못하고, 유니폼도 자기가 응원하는 팀 유니폼을 커플로 입자고 하니 내가 얼마나 힘들었겠냐? 내가 다시는 같이 야구장 가나 봐라. 나 뼛속까지 SSG 팬인 거 너도 알지? 잠깐만 나 택시에서 내려야 해.”

출처  Pixabay


기본요금만 계산하고

카드를 서둘러 공손히 돌려드렸다.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내리는 손님 등 뒤로

작게 외친다.


“미안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흔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