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쏟아진 날
그리 높지 않은 산 중턱
홀로 지내는 외딴집
친구가 놀러 왔다
술자리가 길어져
잠시 졸았나 보다
눈을 뜨니
친구가 사라졌다
현관문을 열고 밖을 바라본다
흔적이 없다
친구가
온 흔적도
간 흔적도
흐트러짐 없이
눈이 그대로다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뭐 하냐? 문은 왜 열었어?
찰나의 망설임이 채 끝나기 전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신발 따위 챙길 겨를에
한걸음이라도 더 뛰었다.
무서워서 뒤돌아보지도
멈추지도 못했다.
이쯤이면 될까 싶었다.
어쩌면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공포심을 억누르며 간신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내가 헤집고 뛰어온 흔적이 없다.
흐트러짐 없이
눈이 그대로다
친구가 다가온다
웃으면서 천천히
지겹지도 않냐?
또 살아있을 적 코스프레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