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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an 29. 2023

흔적

폭설이 쏟아진 날     


그리 높지 않은 산 중턱      


홀로 지내는 외딴집     


친구가 놀러 왔다     


술자리가 길어져     


잠시 졸았나 보다     


눈을 뜨니     


친구가 사라졌다               




현관문을 열고 밖을 바라본다     


흔적이 없다     


친구가     


온 흔적도     


간 흔적도     


흐트러짐 없이      


눈이 그대로다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뭐 하냐? 문은 왜 열었어?               




찰나의 망설임이 채 끝나기 전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신발 따위 챙길 겨를에     


한걸음이라도 더 뛰었다.     


무서워서 뒤돌아보지도     


멈추지도 못했다.               




이쯤이면 될까 싶었다.     


어쩌면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공포심을 억누르며 간신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내가 헤집고 뛰어온 흔적이 없다.     


흐트러짐 없이      


눈이 그대로다          




친구가 다가온다     


웃으면서 천천히     


지겹지도 않냐?

또 살아있을 적 코스프레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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