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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y 02. 2022

미필적 고의

  매우 낡은 책 표지와는 다르게 내부는 찢어지거나 접힌 곳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책을 기증한 사람의 책장 속에 오래 잠들어 있다가 최근에서야 도서관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 소설에 관심이 많은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무엇보다 책 제목이었다.     


아직 살아있나요?     


  내용을 짐작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오싹하고 섬뜩한 게 딱 내 취향일 거라는 느낌이 온다. 다만 보통 책 겉면을 보면 유명인의 감상평이나, 대형 서점에서 판매 1위를 했다는 광고 문구가 자주 보이는데 이 책은 조금 유별나다. 표지는 시커먼 색으로 뒤덮여있고 제목만 새빨간 색으로 적혀있을 뿐 작가의 이름조차 없다.     

  대여를 해서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챙겨 먹었다. 나른해지려는 기분을 억누르며 가방에서 책을 꺼내 소파에 앉았다. 표지 안쪽에 작가 소개가 짤막하게나마 적혀있다. 이전에도 책을 발간했나 보다.     


사람을 죽여주나요?

사람을 살려주나요?     


  이렇게 두 편에 이어서 이 책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뭐, 작가가 중요하지는 않다.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기억나는 작가는 몇 없다. 예상처럼 제법 잘 쓴 범죄 소설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 한참을 집중해서 페이지를 넘기다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다른 페이지와 질감 및 색깔이 거의 흡사하고 크기도 딱 맞게 잘린 종이가 한 장 끼워져 있었다. 


네가 나를 죽였어.     


  그 종이에는 앞뒤 모두 하나의 문장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글씨체마저 비슷해서 그냥 잘못 인쇄된 페이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페이지 숫자가 없고 손으로 잡아당기니 책에서 그냥 쑥 떨어져 나왔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끼워 넣은 것이 확실했다. 장난이 조금 진지하고 지나치다는 생각마저 든다. 왜 이런 짓을 한 것일까? 일단 있던 자리에 다시 잘 맞춰서 넣어두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십여 페이지를 더 읽었을 때쯤 또 한 장을 맞닥뜨렸다.     


네가 나를 죽였어잊고 싶겠지만 그 사실은 변함없어.     


  읽던 자리에 책갈피를 끼우고 뒤 페이지들을 빠르게 넘기며 그런 종이가 더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이제 기억나? 네가 나를 어디에 묻었는지.     


  슬슬 불안해졌다. 정말 알고 있다는 것인가? 이제 이건 더 이상 장난으로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다. 허겁지겁 모든 페이지를 거칠게 넘기며 종이들을 죄다 찾아서 내려놓았다. 설마가 불안으로 바뀌고 마지막에는 확신이 되었다.      


  그때 갑자기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고, 나는 깜짝 놀라 온몸을 움츠리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쓸데없는 광고 전화였기에 화를 내며 끊어버리고 도서관 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걸었다. 책을 기부한 사람에 대해서 물었다. 하지만 도서관 측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책을 샅샅이 더 뒤져보았지만 힌트가 될 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지만 그런 책을 출판한 적이 없단다. 난감하다.     


  다음 날 다시 도서관으로 찾아갔다. 재차 기부자에 대해 물었지만 대답은 같았다. 그렇다면 나보다 앞서서 빌려간 사람이 있었냐고 묻자 내가 첫 대여자란다. 할 수 없이 혹시나 아는 생각에 책이 꽂혀 있던 곳으로 다시 찾아가 봤다. 그 자리에는 딱지 모양으로 접은 하얀 쪽지가 꽂혀있었다.     


그만 가서 자수해그러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주변을 급히 둘러보았지만 나이가 지긋한 노인과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몇몇만 책상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 길로 경찰서에 찾아갔다.



<작가의 꿈보다 해몽>

이번 글을 쓰게 된 단초는 도서관에 빌린 책 속에 꽂혀있던 쪽지였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책을 읽던 중 건네받은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예상됩니다.

내용은 사소했습니다. 어제 영화 재미있었냐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제가 전날 넷플릭스로 영화를 한 편 봤었거든요.

그래서 상상의 나래를 한 번 펼쳐보았습니다.

누군가 무심코 혹은 작은 의도를 가지고 가볍게 툭 던진 메시지가 어떤 당사자에겐 큰 협박이나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요즘 저는 도서관에서 책을 집어 들 때마다 혹시 숨어있는 메시지가 또 없는지 살펴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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