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호 May 20. 2022

새우 싸움에

  두 나라는 항상 서로를 향해 칼날을 세우고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 사이가 나빴던 것일까. 백 년,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봐도 지금과 딱히 다르지 않았다. 고문서에 적힌 내용을 일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하나의 나라가 반으로 갈라졌다는 이야기가 짤막하게 쓰여있긴 한데 두 나라 모두 인정할 마음이 없다. 내가 물이면 너는 기름이고, 네가 물이면 나는 기름이 되겠다는 입장이다.     


  작은 분쟁이 대부분이었지만 큰 싸움으로 번진 적도 있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거의 굴복시키다시피 했었는데, 균형을 맞추려는 초강대국들의 개입으로 국경은 변함없이 유지가 되었다. 대신 패배를 한쪽은 많은 것을 잃었다.     


  이번에도 예전처럼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며, 티격태격하다가 말 것이라 믿었다.

그동안 사소한 일들로 시비가 붙었던 적이 도대체 몇 번이던가. 게다가 이제는 양쪽의 국방력 차이가 극명하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상대국에 역병이 돌아 힘들어하는 상황임을 뻔히 알면서도 일방적으로 의약품에 들어가는 주요 소재에 대한 수출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거기까지는 어찌어찌 넘어가나 했는데 역병의 근원지에 대한 음모론이 돌자 서슴없이 치고받는다.


  주변국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있었다.

둘이 싸우면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는 국가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들이 더 많았다. 서로의 속셈을 숨기고 일단 지켜보기로 했는데 한 나라가 불쑥 나서서 자신의 우방국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동안 켜켜이 쌓아왔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노골적으로 상대편을 비방한 것이다. 그러자 잠자코 상황을 주시하던 국가들도 하나 둘 목소리를 내며 달려든다.     


  전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인접국이 많은 나라일수록 복잡한 정세 속에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정작 싸움의 발단이 된 두 나라는 전면전을 살살 피하면서 뒤에서 실속을 챙기고 있다.     


  긴급 대책 회의가 열렸다.

이렇게 큰 전쟁은 역대 세 번째다. 한 대륙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대륙에 있는 나라들까지 기다렸다는 듯이 참전하면서 전 지구적으로 사상자와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 사실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어서 급하게 모임이 성사되었다. 각국의 지지율에 따라 '대표 신'들이 회의실에 마련된 자리를 빠르게 채워나갔다.


  신들의 서열은 인기 순이다.

순전히 인간들이 어떤 신을 더 지지하느냐에 따라 서열이 매겨진다. 대놓고 말은 안 해도 중도층 혹은 무신론자들로 불리는 사람들을 영입하기 위해 다들 물밑 작업이 치열하다. 이번 사안을 놓고 제2 신과 제3 신은 서로 의견이 완전히 다르다. 적극 개입과 방치를 놓고 자신들의 주장을 열렬하게 펼치고 있다. 제1 신은 입장이 좀 애매하다. 전쟁을 벌이는 양측에서 받고 있는 지지율의 차이가 거의 없다. 개입도 방치도 득 될 것이 별로 없는 처지라 머리가 복잡하다.     


  옥신각신 회의가 길어진다.

그만큼 지구는 더 황폐해진다. 역사적으로 두 차례 큰 전쟁을 겪었음에도 그들은 딱히 배운 게 없다. 이번 사태가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되고 나면, 한 단계라도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해 눈치 싸움이 심해진다. 고위급 신들이 주장을 굽히지 않자 지지율이 낮은 하급 신들은 그냥 회의장을 이탈하거나 인간들 자체를 포기하고 다른 별로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신들도 양쪽으로 편을 가르더니 싸움도 불사할 태세다. 회의 테이블의 분위기가  빠른 속도로 식어간다. 


  호시탐탐 지구를 노리던 외계 생명체에게 드디어 절호의 기회가 왔다.

지구 내부에서 큰 전쟁을 치르느라 바깥으로 눈을 돌릴 여유도 없으며, 방어를 할 만한 무기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무혈입성이나 다름없을 천혜의 조건이라고 판단한 외계 군단은 지구를 점령하기 위해 선전포고도 없이 들이닥쳤다.


  인류의 멸망이 바로 코앞이었다.

뒤늦게 힘을 합치려 해 보았지만 이미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제 지구는 외계 문명에게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결국 보다 못한 지구의 신들이 직접 나서서 해결을 하기로 했다. 그들의 존재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 외계 생명체를 몰아내자는 안건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오랜만에 신으로서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외계 생명체들을 상대로 기분을 제대로 풀었다.     


  전 우주에 전운이 감돈다.

어느 누구도 감히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다. 인간들은 물론이고 외계 생명체 역시도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중재는커녕 그저 자신들의 신이 이기길 빌며 두려움 속에서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우주가 생겨난 이래로 단 한 번도 없었던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지구의 신들은 강했지만 상대방 신들도 만만치 않았다. 신들의 공격과 방어가 쉬지 않고 이어지자 크고 작은 행성들이 힘없이 산산조각 나며 터져나갔다. 


  우주 변두리에 있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벌어진 두 나라의 자존심 싸움이 우주의 존폐가 걸린 최악의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작가의 꿈보다 해몽>

우주에 인간보다 월등한 지능과 과학기술을 가진 존재가 있을까요? 만약 그들이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쳐들어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영화나 소설에서는 영웅이 등장하거나 전 인류가 하나로 뭉쳐 그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하지만 진짜로 멸망이 눈앞에 다가온다면, 인간들만으로는 도저히 그들을 막아낼 수 없다면, 신들이 나타나서 우리를 '구원'해 줄까요? 반대로 우리가 인류보다 못한 기술력을 가진 다른 별을 공격한다면 그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저는 왜 쓸데없이 이런 상상을 하고 있을까요?

새우깡이랑 고래밥이나 먹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새우'깡'이 고래'밥'보다 크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미필적 고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