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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Sep 05. 2023

담배


  담배냄새. 

  지독하지만 그윽한 그 내음이 오래 묵은 결심에게 시비인지 유혹인지 모를 수작을 부린다.




  아랫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담배를 피운다. 오전 일곱 시, 열 시, 열두 시. 오후에는 한 시, 다섯 시, 일곱 시, 아홉 시 그리고 열한 시.


  알람이라도 맞춰둔 것일까? 냄새만으로 정확한 시간을 파악가능하다.


  처음에는 냄새가 너무나 싫었다. 금연을 한 지 무려 십오 년이 흘렀기에 거부 반응이 일어나며 비리고 역겹게 느껴졌다. 그래서 빌라 출입구를 지키는 경비아저씨에게 여러 차례 고통을 토로했지만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직접 찾아가서 따지려는 마음은 괜한 시비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에 덮여버렸다. 마지막 방법으로 이사를 심각하게 고려해 보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한 달 그리고 두 달. 활활 타오르던 불평불만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앞 모래성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무렵 그 여자를 우연히 만났다. 담배 한 보루를 들고 그 집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이 일어났음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예뻤다. 그리고 혼자 사는 듯했다. 


  그녀의 숨결이 벽을 타고, 창문을 통해 내가 사는 공간을 점령한다.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나까지 물들인다. 온 힘을 다해 들숨으로 한껏 폐를 부풀리고 아쉬움을 담아 내뱉는다. 충만한 상상력이 긴 시간을 소모시킨다.




  “술은 이겨낼 수 있는데, 담배는 그렇지 못해. 반드시 멀리 해야 제 명까지 살 거야. 명심해!”


  십오 년 전, 전국적으로 유명한 무당이 내게 신신당부한 말이다. 그 후로 나는 바로 담배를 모두 버렸고, 아무리 술에 취해도 절대 입에 문 적이 없다. 오래 살 생각은 없었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에 눌려 그렇게 담배 맛을 잃어버렸다.




  소주잔을 비우고 그녀의 몸을 훑고 나온 호흡을 안주삼아 잘근잘근 씹어 삼킨다.


  그녀와 다시 마주치기 위해 서성거려 봤지만 기회가 주어지 않았다. 우편물을 통해 이름을 알아낸 것이 고작 전부였다. 어쩌면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다.


  간암. 용하다는 그 무당은 가짜였음이 확실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술이 아니라 담배나 원 없이 피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원망도 해 본다. 그랬다면 아랫집 여자와 친해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을 텐데.


  다음 주에 정밀 검사가 예약되어 있지만, 그건 단순히 내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대한 선고일뿐 크게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


  술이 오르자 용기도 함께 샘솟는다. 어차피 곧 죽을 목숨. 세수를 하고 가장 아끼는 옷으로 갈아입는다. 아홉 시까지는 고작 5분 남았다. 마지막으로 꼼꼼하게 거울 속 내 모습을 살펴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벨소리가 끝나기 전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아, 윗집입니다.”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자물쇠를 푸는 소리에 뒤이어 문이 움직인다.


  “무슨 일이시죠?”


  “안녕하세요. 실수로 과일을 너무 많이 주문해서 조금 나눠드리려고요.”


  여자는 고맙다며 과일을 받아 들더니 혼잣말인 것처럼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혹시 담배 피우세요?”




  어지러웠다. 손끝, 발끝을 향해 질주하는 니코틴의 아찔한 속도에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었어!


  “괜찮아요?”


  “네. 좋습니다.”


  삼 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했다. 게다가 그녀도 나와 같은 전업작가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비록 우리 둘 다 아직은 유명하지 않지만, 그 사실이 오히려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흥분이 멈추질 않았다. 열한 시가 되기 직전 또 내려가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조급해지면 될 일도 망친다. 대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편의점에 가서 그녀가 피우는 것과 똑같은 담배를 두 보루 구입했다. 벌써부터 내일이 기다려진다. 오랜만에 느끼는 활기가 살고자 하는 의지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역시 하루의 마무리는 꿀맛 같은 담배 한 모금으로.




  콜록콜록. 집 안이 온통 뿌옇다. 그리고 뜨겁다. 정신을 부여잡고 일어나려 했지만 호흡을 할수록 더 아득해지기만 했다. 모든 것이 흐릿했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코 앞까지 가까워진 죽음을.




  누구더라? 아! 그때 그 이름값 못하던 무당이네.


  “내가 담배는 멀리하라고 했지? 잠들기 전에 대충 끈 담배꽁초가 당신을 이렇게 죽게 만들었어. 그리고 간암은 사실 의사의 오진이었는데. 쯪쯪. 그나마 저승길이 심심하지는 않겠네. 둘 다 빨리 따라와.”


  뒤를 돌아보자 아래층 여자의 원망어린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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