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中年)

by 김재호

양보의 피가 채 마르지 않은 직진의 칼날 위

관성으로 나아가고 있는 발걸음은

아득한 절벽을 마주해도 멈출 수 없으니

촘촘해진 호흡과 낮아진 시선뿐.


몸을 숨긴 바람 따라 요동치는 낙엽의 물결

무게를 잃어버린 목소리는

잘라내지도 자라나지도 못하니

빼곡해진 소름과 마르지 않는 식은땀뿐.


땀도 검게 태우던 열기 식어버린 새벽 아래

예고 없이 울리는 하루의 출사표는

어제의 편린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니

버티지 못한 기적과 덩그러니 남은 희망의 가죽뿐.


태양이 두드리는 하얀 건반

달이 짓누르는 검은 건반

향기롭게 썩어갈 수 있도록

웃음 지으며 울 수 있도록

쉬이 가더라도 쉬이 잊히지 않도록

길어진 그림자를 구름 속에 숨길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봄은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