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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y 17. 2022

진눈깨비

1-1.  무겁게 내려앉은 먹구름.

평소보다 빨리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에서 비가 섞인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산한 거리에는 뽀얀 입김을 내뿜는 자동차와 집을 향해 바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뜨문뜨문 보인다.     


2-1.  요즘 먹을 것이 변변찮았다.

빨리 찾아온 겨울은 늦둥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영 달갑지 않다. 하루 일해 하루 먹고사는 처지에 찬밥 더운밥 가릴 게 못되지만 부모 마음이라는 게 항상 아쉽고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도 오늘은 일진이 아주 좋다.     


3-1.  날씨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20년이 넘는 베테랑 버스 기사지만, 바닥에는 살얼음이 끼어있고 시야를 가리는 눈과 비 때문에 신경이 날카롭다. 버스 안은 대체로 조용하다. 승객이 많이 타긴 했지만 앉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휴대전화를 보고 있고, 나머지는 멍한 표정으로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      


1-2.  학원이 싫다.

특히 영어 학원은 숙제가 많고 매일 수업 시작과 함께 쪽지 시험을 봐야 한다. 엄마한테 말씀드려서 태권도나 수영 학원으로 바꿔야겠다. 그나저나 급하게 나오느라 우산도 안 가지고 나와서 점퍼와 신발이 젖었다.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했을 때 그냥 학원에서 기다릴 걸 그랬다. 


2-2.  비에 젖은 몸이 무겁다.

주변이 점점 희뿌연 어둠으로 변하고 있다. 게다가 눈에 물이 자꾸 들어가서 불편하다. 그래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며 힘을 내본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입을 벌릴 수 없어 답답하긴 해도 아직은 참을만하다.     


3-2.  히터 때문인지 나른하다.

차고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승객들도 대부분 내렸고 거리는 아까보다 더 한산해졌다. 팔다리가 무겁게 느껴진다. 소주에 얼큰한 어묵탕을 먹기로 한 약속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신다. 먼저 운행을 마친 동료들은 벌써 따뜻하게 녹은 몸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발에 힘이 들어간다.     


1-3.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묻는다. 집 근처라고 거의 다 왔다고 대답한다. 엄마가 평소 내가 다니는 길로 우산을 가지고 걸어오고 있단다. 거짓말을 들켰다. 편의점에서 군것질을 하다가 늦었다. 급히 집 쪽으로 뛴다.     


2-3.  둥지가 눈에 보인다.

  젖은 날개가 추위에 얼어 조금 낮게 날았다.


3-3.  창문에 뭔가 부딪혔다.

  퇴근 생각에 우회전하면서 주위를 덜 기울였다.     


1-4.  길을 건너다 미끄러운 바닥 때문에 넘어졌다.

  버스가 나에게 다가온다.     



1+2+3.  새의 날개가 부러졌다. 버스 창문에 금이 갔다. 넘어진 아이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새는 안간힘을 쓰고 다시 날아보려 한다. 급정지를 한 버스 기사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버스가 멈춰서 살았다고 아이는 생각했다. 새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버스 기사는 그제야 넘어진 아이를 발견하고 안도가 섞인 한숨을 내쉰다. 아이는 벌떡 일어나 옷을 털고 다시 뛴다. 새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연신 퍼덕인다. 버스가 다시 움직인다. 아이는 벌써 저만치 가고 있다. 새 위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버스가 아주 살짝 꿀렁인다. 아이는 엄마와 만났다. 새는 검은 도화지 위에 마르지 않은 붉은 점이 되었다. 버스 기사는 깨진 창문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아이는 거짓말이 들통나서 혼나고 있다. 새의 입에서 반쯤 잘린 지렁이가 기어 나온다. 버스 기사는 차고지에 들어갔다. 아이는 엄마와 집에 들어갔다.     



1-2+3.  아기 새는
    추위와 허기를 버티며 엄마를 애타게 부른다.



<작가의 꿈보다 해몽>

세상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습니다.

나비 효과니 그런 거창한 단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당장 주변의 모든 사람, 환경, 자연들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심지어 집안에 들어온 벌레며, 공기, 내리는 비나, 주변의 소음마저도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발생하는 슬픔을 모두 알 수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제가 인식하지도 못하고 저지른 행동들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나 걱정이 됩니다.

뭐 저야 힘없는 한낱 작가 지망생이니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다니지는 않았으리라 믿지만

다수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국가나 큰 사회단체의 장 혹은 기업의 총수와 임원들은

조금 더 신중해졌으면 하는 게 작은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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