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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y 16. 2022

최대 다수의 내로남불

 남편은 나를 사랑한다.

 나의 남편이 아닌 그도 나를 사랑한다.

 나는 나의 남편과 나의 남편이 아닌 그 모두를 사랑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제러미 벤담     

 

 우리 셋은 지금 최고치의 행복을 느끼고 있다. 비록 정량적으로 표현할 방법은 없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니까. 눈을 감고 지금 상황을 가만히 떠올리면 사타구니에서 시작된 짜릿함이 손끝 발끝까지 퍼진다. 그 둘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만의 착각 아니냐고? 나는 누구보다 그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함께하는 시간도, 그렇지 않은 시간 마저도, 충만한 사랑의 물결에 숨이 막힌다.     


  나의 남편이 아닌 그는 Risk를 즐기고 불안함 속에서 더 큰 쾌감을 느끼는 Type이다. 나의 남편과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소심하고 겁이 많으며 주변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남편. 그렇다고 딱히 문제가 될 소지는 없다. 나는 그 둘을 적절하게 다룰 수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고통은 싫어하고 쾌락을 추구한다는 사실. 그것만 잘 파악하고 나면 통제와 조종이 수월해진다. 그들은 나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내 덕분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진리에 한 걸음 가까워졌으니.     


  가끔 세 명이서 한자리에 모이기도 하지만 나를 제외하고 그 둘이 따로 만나는 경우는 없다. 매개체로써 내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에 조화로운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그 둘 사이에 끼어있는 날은 더더욱 흥미롭다. 남편의 눈을 피해 나의 남편이 아닌 그와, 나의 남편이 아닌 그 앞에서 남편과 함께 누리는 흥분되는 순간들은 나에게 최고의 에너지를 선사한다.     


  혹시라도 우리 세 명 중 한 명이 개인적인 욕심이나 의심 혹은 질투 때문에 완벽한 균형을 망가뜨리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아직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최대 행복이 먼저 깨질지 최대 다수가 깨질지는 모를 일이다. 당장은 내가 잘하면 된다. 멈추게 하거나 달리게 하는 버튼은 오직 내 손안에 있다.     


  우연히 내 남편이 아닌 남자의 아내를 보았다. 마트 식품 코너에서 그 둘의 다정한 모습을 목격하자 가슴 깊은 곳에서 애증이 끓어올랐다. 내 남편이 내 남편이 아닌 남자의 아내와 해맑은 미소를 띤 채 팔짱을 끼고 장을 보고 있었다. 1박 2일로 워크숍을 간다고 했던 남편이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 잠시 당황했지만 여기서 판을 깨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일단은 지켜보기로 한다.     


  당장 떠오른 방법은 모르는 척하는 것. 왜 질투가 나고 화가 나는지 모르겠지만 딱히 막을 방법이 없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주문만 거듭 외울 뿐이다. 운전 중에도, 회의 시간에도, 밥을 먹거나 자려고 누웠을 때도 자꾸 마트에서 봤던 장면이 떠오른다.      


  꿈을 꾸었다. 환하게 웃는 남편이 서서히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그냥 스쳐 지나간다. 뒤돌아보니 그 여자가 남편을 끌어안고 있다. 고개를 돌려 애써 무시해보지만 그들의 커다란 웃음소리까지는 막을 수는 없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남편과 나의 남편이 아닌 남자는 여전히 행복에 겨워하고 있다. 특히나 나의 남편은 유난히 더. 분명 내 남편이 아닌 남자의 아내 역시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내가 예전에 그랬듯이. 이제 나만 불행하다. 남편을 독차지하고 싶다는 그릇된 감정이 주체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최대 다수의 행복을 지키려면 지금 당장 내 불행을 멈춰야 한다. 어떤 방식이 되었든.



<작가의 꿈보다 해몽>

저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상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그래서 더 없이 비현실적인 희망.

행복이라는 것도 질량이나 에너지처럼 총량이 정해져있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됩니다.

작년보다 참석자가 훌쩍 늘어났는데, 나눠먹어야하는 생일 케익는 그 크기가 항상 정해져있다면.

행복이라는 것은 여전히 정량적으로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각각의 개인은 수시로 행복을 느끼곤 하죠.

남들의 행복이 줄어야 내 행복이 늘어날 기회가 생기는 것은 너무 우울한 생각이니까

행복만큼은 총량이 정해져 있지 않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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