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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r 31. 2023

주머니의 속사정

이번에만 봐준다.


  저는 집안일 중에 빨래를 도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저는 빨래보다 설거지를 더 싫어하고 아내는 설거지보다 빨래를 더 싫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사실 어쩔 수 없이) 그리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청소, 설거지, 빨래 모두 더러워진 것을 깨끗하게 되돌리기 위해 행하는 '숭고'한 작업임에도, 더럽히는 짓보다 더 하기 싫은 이유는 뭘까요?


  각설하고 전에도 글을 통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빨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신경도 많이 써야 합니다. 작은 실수라도 하게 되면 되돌리지 못할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옷에 물이 들거나, 옷이 줄어들고, 가끔은 옷에 달린 고리 때문에 구멍이 생기는 일도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반복하면 어떤 일이든 문제없이 기계적으로 척척 해내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짜증 나는 일이 느닷없이 발생하곤 합니다. 아주 작고 여린 녀석이 원인이 되어 일으키는 어마어마한 사고 말입니다.


  자, 퀴즈입니다. (틀리거나 맞추지 못한다고 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으니 마음 편히 먹으시고요.)


  그 사고뭉치가 무엇일지 다음 주어지는 힌트를 보시고 맞춰보세요.


  1단계 힌트 : 감기


  벌써 감이 오시지는 않겠죠?


  2단계 힌트 : 콧물


  아직도 잘 모르시겠다고요?


  3단계 힌트 : 하얗고 네모난 종이


     

  이제 아시겠죠? 정답은 바로 '휴지'입니다.


빨래를 널기 전에 털어 낸 휴지의 참혹한 잔해들


  완전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옷에 붙은 자잘한 휴지조각들을 털어내느라 양팔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덕분에 청소기까지 돌렸야 했습니다. 휴지 한 장 덕분에 팔 운동도 하고 청소도 하고 아주 '일석이조'군요.



  아내가 며칠 전부터 감기로 고생 중입니다. 옷 주머니에 휴지를 넣어두고는 그냥 빨래 통에 던져 넣은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거를 '안 봐도 CCTV'라고 하겠죠.


  담당자로서 주머니 속을 하나하나 살펴보지 않았으니 저의 근무태만이며 저의 잘못이라고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보통 바지에는 4개 이상의 주머니가 있고, 윗옷에도 주머니가 여럿 있습니다. 수백 수천 번 중에 한 번도 벌어지지 않을 희박한 확률 때문에 매번 그런 주머니를 다 뒤져본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허비되겠습니까?


  그리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설거지할 그릇들을 싱크대에 둘 때 물에 담가 주거나 기름기 묻은 그릇들은 티슈로 닦아내고 겹치지 않게 별도로 두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잖아요.


  아내에게 버럭 하려다 참습니다. 감기에 걸려서 생긴 일이지만, 감기 때문에 봐주기로 했습니다. 대신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이번 일을 합쳐서 두 배로 툴툴거릴 생각입니다.


  더불어 감기가 끝날 때까지는 '주머니의 속사정'을 잘 헤아려야겠습니다. 초콜릿과 사탕이 난무하는 2월과 3월을 무사히 넘어가는 중이지만 다시 한번 '방심은 금물'이라는 삶의 명령에 따르기로 했거든요.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그리고 옷을 벗어서 빨래 통에 넣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요?




  아래는 빨래에 대해서 예전에 썼던 글입니다.^^

https://brunch.co.kr/@530fadf1678b488/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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