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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un 08. 2023

텃밭과 소작농


  시간이 흐르면서 입맛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 입맛을 만족시킬 재료를 키우기 위해서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줘야 한다. 수많은 장소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빛과 물이 확보된 곳으로 선정되었다.


  처음에는 땅이 척박하여 식물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 물을 고루고루 충분하게 공급해 주었다.


  해산물을 가장 먼저 맛보았다. 예상을 상회하는 식감이었다. 갖가지 식물들도 뿌리를 내리고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불을 피워서 익혀 먹기도 했고, 바람에 말려서 먹기도 했다.


  작은 동물을 키우다 보니 욕심이 생겨서 차츰 큰 가축들도 들여놓기 시작했다. 초식동물은 부드러운 육질이라 좋았고 육식동물은 특유의 향이 식욕을 자극했다.


  가끔은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음식이 필요했기에 별도의 저장소를 두 군데 만들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과수(果樹)들이 새콤 달콤한 열매를 맺고, 날개가 달린 동물들도 번식을 하니 다채로운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매번 비슷한 것들로 배를 채우다 보니 싫증이 났다. 그래서 경작지를 싹 갈아엎기로 했다.


  새로운 작물과 동물들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 직접 관리하고 키우는 일이 지겹고 귀찮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 역할을 대신해 줄 대리인을 불러냈다.


  그들은 내 지시를 잘 따랐다. 효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일처리를 하면서 자신들의 몫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모습을 보며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나는 그들의 일처리에 대단히 만족했기에 틈틈이 다양한 선물도 챙겨주었고, 가끔 그들 내부에서 발생하는 싸움 정도는 모른 척해주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들이 서서히 선을 넘고 있다. 내 경작지를 완전히 망쳐놓고 있다. 재료들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이상한 작물들도 자주 눈에 띈다. 그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하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산물에서는 괴상한 맛이 난다. 바다에 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을 버렸나 보다. 풀어놓고 키워야 하는 동물들을 가둬놓았는지 육류 역시 식감이 형편없어졌다.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물과 공기가 오염되다 보니 전체적으로 품질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내 냉장고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망쳐놓고 있다. 꽁꽁 얼려놓았던 얼음이 녹아서 줄줄 흘러내린다.


  그리고 욕심이 어찌나 많아졌는지 자신들의 몫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만들어서 쓰지도 않고 버리고 있는 지경이다. 도대체 그들이 왜 존재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더 이상 두고 보지 못할 정도로 점점 밉상짓을 한다. 조만간 소작농들을 몰아내고 경작지를 직접 관리해야 할 날이 올 것 같다. 그래도 그간의 정이 있으니 시간을 조금 더 줄 생각이지만 인간들이 과연 내 뜻을 헤아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친하게 지내는 옆 동네 신(神)은 경작지를 망쳐놓은 죄를 물어 큰 벌을 내리라고 한다. 뜨거운(혹은 차가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릴 거라고 하면서.


  고민이다. 지구가 회복할 수 있도록 아무것도 없던 예전처럼 돌려놓고 다른 텃밭을 찾아 떠날까? 가뜩이나 요즘 입맛이 변하는 중이니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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