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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un 07. 2023

혼자만의 도서관


  정말 기구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어쩜 이렇게도 구구절절 가슴을 후벼 파는지 그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다. 지금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다고 한다. 게다가 좌측 팔과 다리뼈는 사고로 인해 조각조각 부러진 상태였다. 아버지는 사고가 난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졸음운전을 하던 대형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엄마와 아빠가 타고 있던 차를 덮쳤고 오직 혼자 살아남았다고 한다.     


  조각났던 팔과 다리의 뼈들은 붙기 시작했지만 영유아의 성장 과정을 무시한 채 강제로 이어 놓은 탓에 어른이 되어서도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보호자라고는 여든이 넘은 할머니 밖에 없었으니 보상은커녕 하소연마저도 불가능했으리라.     


  학교 성적이 매우 좋았다. 어색한 왼쪽 팔과 다리와 달리 오른손은 멀쩡했으니까. 뛰어놀지 못하니 앉아서 하는 공부에 재미를 붙였고 친구들의 괴롭힘이나 조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사악한 친구들을 막아줬던 것은 도서관의 책들이 내뱉는 고요한 일침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녀의 성적은 그녀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았다. 비슷한 성적의 친구들이 좋은 직장을 얻거나 꿈을 찾아가는 것과는 다르게. 대다수의 회사에서 그녀의 실력을 인정해 주었지만, 그녀의 신체와 그녀의 배경이 그들이 마주하는 진짜 그녀였다.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자 그녀가 밟고 올라설 자신감은 또다시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감정 특히 사랑을 받는다는 그 특이하고 오묘한 울림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를 온전하지 않은 팔이지만 힘껏 안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까.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잠시의 행복을 느낄 사이도 없이 남편은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어마어마한 빚까지 떠안게 되었다. 남편은 그녀를 위해 이혼을 요구했지만 그녀는 함께 이겨내는 쪽을 택했고 그 선택은 더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남편의 장례식에서 그녀는 온갖 질타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모든 원흉은 그녀였으며, 오직 그녀 때문에 벌어진 일이어야만 했다. 남편의 곁을 하룻밤도 지키지 못하고 강제로 아이와 함께 길거리로 쫓겨났다.     

  이제 그녀는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혼자만의 도서관. 조촐한 반 지하 단칸방에서 힘겹게 아이를 지키고 있다. 남편이 몰래 남겨준 통장이 아니었다면 삶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일기를 덮고 책꽂이에 다시 꽂아둔다. 내 일기는 온갖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버팀목이다. 저렇게 모질고 거친 운명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있는 그녀를 보며 힘을 얻는다. 거울 속 그녀를 보면서 나를 다독인다. 오른손으로 글을 쓰며 나만의 도서관을 채워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아빠를 닮은 아이가 내 품에 안겨 웃는다. 나도 웃는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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