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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Apr 28. 2023

다른 남자들을 응원하는 아내

그것도 내 눈앞에서


결혼 전에는 아내가 이렇지 않았다.


보잘것없던 나를 위해

항상 열렬히 응원해 주던 아내.


되돌아보면

아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능력을 인정받았을 무렵

그 당시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출처 : Pixabay


그저 순진하게 내 일에만 집중하던 나는

그녀를 처음 마주쳤을 때

그 자리에서 완전히 얼어붙었다.


당시에 아내는 이미 유명인사였다.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

선배들은 물론이고

관계자들 사이에서

연예인급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렇게 첫눈에 홀딱 반한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고백을 했고

그녀는 잠시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나에 대해서 전혀 몰랐을 테니까.


그리고 같은 계열사는 아니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각자의 일을 해왔기에

주변의 시선도 무시할 수 없었으리라.


나의 열렬한 애정 공세에

그녀는 나의 진심을 마침내 받아주었고

그 후로 햇병아리 같았던 나를 위해

아낌없는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었다.


그녀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나는

밤낮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상처를 입었을 때는

그녀의 품에서 쉬었고

작은 성과에도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기뻐했다.


데이트를 자주 하기 힘들 정도로

부족한 연봉을 받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름 행복했다.


그렇게 꿈결 같은 몇 년이 흘렀을 때쯤

우리는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가진 것은 여전히 형편없었지만

하늘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리기로.


출처 : Pixabay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운명이었을까?

그 후로 나는 일취월장했다.


그리고 상상 속으로만 그리던 일들이

하나둘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굴지의 기업들이

나를 '모셔'가기 위해

엄청난 돈을 싸들고 줄을 섰다.


짜릿했다.

내 인생 절정의 순간이었다.


나는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고자

더 좋은 조건을 요구했고

그들은 기꺼이 수용했다.

내 미래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아내와 나는 함께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우리는 큰 부를 얻었고

예전에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던 

다양한 경험들을 원 없이 즐겼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아내는 사회생활을 계속 이어가길 원했기에

나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내가 성공을 했다고 해서

아내의 꿈을 막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출처 : Pixabay


그런데 그 후로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드러나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멀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이제 나를 위해

박수를 치거나 응원하지 않는다.


거기까지는 어찌어찌 참을만했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내가 아닌

다른 남자들을 위해

격정적인 춤을 추며 땀을 흘린다.

 

심지어는 내가 빤히 보는 앞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한 두 번은 참아보려 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니까.

그녀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으니까.


하지만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나는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다들 나를 대놓고 ‘먹튀’라고 놀린다.


녹초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온 그녀 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고 울면서 사정했다.


이제 제발 그만두라고.


하지만 그녀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화를 냈다.


속 좁은 놈이라고.


출처 : Pixabay


나는 자신이 없다.


내일 내가 타석에 들어설 때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삼진'이라고 외치며

상대편 투수를 응원할 아내를 

모른 척할 자신이 없다.


내가 1루 수비에 들어갔을 때

내 뒤에서 상대편 타자를 위해

목청껏 '홈런'을 외치는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자신이 없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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