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 시시덕거리던 아내와 딸이 거실로 나옵니다. 아이가 제 앞에서 패션쇼라도 하려는 건지 모델처럼 캣워킹을 하면서 묻습니다.
“나 예뻐?
우문협답은 이럴 때 쓰는 거 맞죠?
“응. 예쁘네.”
그런데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이 낯설면서도 낯이 익습니다.
‘최근에 저런 옷은 사준 적이 없는데 어디서 봤더라?’
곰곰이 생각에 빠진 저를 보면서 아내가 웃으며 묻습니다.
“기억 안 나?”
끙! 또다시 우문이군. 현답을 해야 하는데........ 어디서 봤더라?
“맞다!”
드디어 기억이 났습니다. 아내와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에 커플티를 몇 벌 샀습니다.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이 바로 그중 하나가 분명합니다.
“이게 아직도 있었어? 내 거는 예전에 작아져서 버렸는데.”
물론 아내도 지금은 입어 볼 엄두도 나지 않을 사이즈입니다. (날씬했던 신혼 때 몸매는 어디로 가버린 거니?^^;)
아이는 옷이 마음에 드는지 신이 났습니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모를 감정이 일렁입니다. 결혼한 지 어느덧 17년 차가 되었네요.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아빠, 빨리 세탁기에 돌려줘. 내일 학교 갈 때 입고 가게."
"응. 특별히 울 드라이로 세탁해 줄게."
세탁기에 옷을 집어넣으면서 속으로 생각합니다.
'혹시 너 딸 낳으면 물려줄래? 이러다가 가보(家寶)가 되겠어.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