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가 배가 고프다고 징징거려서 밥줄(충전기)이 있는 소파 옆 멀티탭에 가보니 아내가 이미 선점을 했습니다. (부부끼리는 휴대전화도 서로 닮는 거였나?)
‘힘들어도 조금만 더 참으렴. 서열을 아니, 순서를 지켜야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휴대전화가 허기로 기절할 것 같아서 다시 충전기를 확인했더니 이번에는 아이의 태블릿이 밥을 먹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밥을 오래 그리고 많이 먹는 녀석인지라 결국 다른 밥줄을 찾아 나섭니다.
“서재에 있던 충전기 어디 갔어?”
“학교에 갖다 놨는데.”
“그럼 안방에 있던 충전기는?”
그건 고장이 났는지 딸이 충전이 안 된다고 하여 버렸다고 하더군요. 결국 아내의 것은 아내의 직장에, 아이의 것은 사망 선고를 받고 폐기된 상태라서 제가 주로 이용하던 충전기 하나를 세 명이 쓰고 있던 것입니다.
아이의 태블릿은 이제 한동안 버틸 만할 것 같아 입을 강제로 떼어내고, 다 죽어가는 제 휴대전화의 입을 물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서열을 아니, 순서를 무시한 처사에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충전 100% 해놔야 하는데 왜 뽑았어요?”
“아빠 핸드폰 배터리가 2%밖에 안 남았어.”
며칠 동안 각종 전자기기가 줄을 섭니다. 무슨 ‘오픈 런’도 아니고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죠. 평소에 딱히 뭘 잘 사지 않는 편이지만 가족의 평화와 안녕 그리고 친절함과 배려를 과감히 티 내기 위해 ‘쿠 x’에서 몇몇 제품을 꼼꼼하게 비교해 본 후 결제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주섬주섬 회색 비닐을 뜯어서 새 충전기를 안방 멀티 탭에 끼웠습니다.
“뭐야?”
“충전기.”
'자 이제 칭찬을 거침없이 내뱉어보렴. 어서 어서!'
“엥? 그걸 샀어?”
“그럼 샀지. 밤새 만들었겠냐? 아니면 새벽에 훔쳐왔겠냐?”
“아니~ 그걸 왜 사냐고. 집에 잔뜩 있는데.”
“응? 하나밖에 없어서 다들 내 거 쓰고 있잖아.”
안방 화장실로 잠시 사라졌던 아내가 작은 박스 세 개를 건네줍니다.
"없긴 뭐가 없어? 이렇게 세 개나 있는데!"
이건 도대체 무슨 경우죠? 제가 충전기들의 행방을 묻고, 불편함을 감내하는 동안 아내는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설마 게으른 남편이 주문을 하겠어?'
'귀찮은데 나중에 꺼내주지 뭐.'
'안방 화장실 서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내 폰만 충전하면 됐지 뭐.'
'환경을 생각해서 하나만 쓰자.'
당황스럽네요. 그나마 두 개를 안 샀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랬으면 아침부터 조금 큰 목소리가 난무했겠죠?
저녁에 재회하면 물어볼 생각입니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