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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y 27. 2022

1분만

  인생 전체에 있어 1분이라는 시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하루 24시간은 1440분이라는 큰 숫자로 표현이 가능하며, 한 달은 더 많은 1분들로 이루어져 있고, 1년은 더욱더 많은 1분들로 빈틈없이 메워져 있다. 그래서 그 1분은 원하면 언제든 가질 수 있는 소소하고 하찮은 시간처럼 보인다.      


  애인이 약속 시간보다 1분 늦었다고 불같이 화를 낸다거나, 꽉 막힌 금요일 저녁 퇴근길 위에서 1분을 더 지체했다고 해서 인생을 낭비한 패배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보잘것없어 보이는 1분 때문에 힘겨운 인생을 살고 있다.     


  80년대 대부분의 가정처럼 우리 집도 그리 부유하지는 못했지만, 부모님들이 금슬만큼은 최고였다. 덕분에 본인 포함 여섯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하루 종일 밖에서 열심히 일하셔야 했고, 우리는 그냥 먹고살 수 있음에 감사해야 했다. 나는 형 두 명과 이란성쌍둥이 누나가 한 명 있다. 정자와 난자가 어떤 일을 벌여서 쌍둥이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난 간발의 차로 남자가 되고 누나는 여자가 되었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입대하기 전까지 새 옷, 새 양말, 새 속옷, 새 신발, 새 가방, 새 장난감 등을 단 한 번도 가져 본 기억이 없다. 반면에 누나는 ‘헌’이라는 단어조차 모르고 자랐다. 그리고 몇 분 차이로 녀석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짜증이 난다. 


  중학교 때 나는 큰형을 따라 마라톤 선수 생활을 했었다. 비록 단축 코스였지만 나는 제법 준수한 성적을 내는 유망주였다. 하지만 내 방 한편에 뒹굴던 여러 메달 중 금메달은 단 하나도 없었다. 컨디션이 좋아서 1등을 노릴 때마다 나보다 1분 정도를 앞서 골인 지점을 통과하는 한 명이 어디선가 자꾸만 나타났다. 매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죽을힘을 다해 달렸지만 마지막까지 1분을 따라잡지 못했다. 난 그렇게 1분을 이겨내지 못해서 만년 2등에 머물러야 했다. 아마 그 당시에 단 한 번만이라도 1등을 했다면, 지금 내 방엔 올림픽 금메달이 자랑스럽게 걸려있었을지도 모른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긴장을 했는지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리다 새벽이 되어서야 간신히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시험 시작 30분 전이었다. 어찌 이렇게 무심하고 한심한 가족이 있겠냐 싶겠지만 사실 그들을 탓할 일도 아니었다. 알람 소리에 깨 놓고도 다시 잠든 내가 죽일 놈이지. 아무튼 정신없이 달려 고사장으로 갔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주변에 서서 자식들이 시험 잘 보고 나오길 기도하던 아줌마들 말로는 1분 전쯤에 문이 닫혔다고 하면서 자신의 일인 양 안타까워했다. 난 울며 집으로 돌아왔고 시험도 못 보고 재수생이 되었다. 쌍둥이 누나는 어떻게 되었냐고? 누나도 나와 같이 일어나서 출발했지만 나보다 조금 가까운 고사장으로 배치되었다는 이유로 간신히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왜 남녀 따로 고사장을 쓰게 만들었는지.


  수학능력시험 같이 인생에서 몇 번 일어나지 않는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나는 1분이 모자라는 경우가 너무나 자주 발생한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러 가면  내가 도착하기 딱 1분 전쯤에 출발해버린 후다. 5분을 일찍 나가도 10분을 일찍 나가도 항상 눈앞에서 차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봐야만 봐야 했다. 1분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 발에 땀이 날 정도로 뛰어도 이미 출발한 뒤였고,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가도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일로 해외 출장을 떠나기로 한 날, 설마 했지만 역시나 비행기에 몸을 싣지 못하는 바람에 팀장으로부터 그냥 집에 가서 쭉 쉬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사실 비행기를 못 타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중간에 벌어질 수 있는 변수들을 없앨 목적으로 일부러 공항 근처에 살고 있는 선배네 집에서 잤다. 그럼에도 1분을 늦고 만 것이다. 더 황당했던 것은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서 원래 이륙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Delay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정도까지 늦은 김에 딱 1분만 더 기다려주지. 어떻게 그냥 갈 수 있어!’라고 원망해봤자 바뀌는 건 없었다. 하필 그날 선배의 맹장이 터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배를 부여잡고 떼굴떼굴 굴러다니면서 죽겠다고 소리치는데 도저히 그냥 두고 나올 수 없었다. 처음부터 앰뷸런스를 불렀어야 했다.


  이 글을 통해 아내에게 특별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누구보다 나를 가장 많이 이해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을 볼 때도, 결혼식을 할 때도, 딸아이가 태어날 때도 나는 1분을 늦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살면서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왜 늦었는지 묻지 않았다. 미안하게도 그게 어떤 일이었는지는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서 여기서 밝히기는 어렵겠다. 그냥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마지막으로 내가 죽고 나서 염라대왕을 만나게 된다면, 어쩌면 그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자네. 뭐하다가 1분 늦었어? 조금만 빨리 왔으면 그나마 편한 곳으로 갔을 텐데.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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