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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Aug 21. 2023

수험자에서 출제자로

  문제 푸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다. 그중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하는 그런 난제들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마치 하염없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드디어 마주한 느낌이랄까? 짜릿한 전율과 함께 반드시 그녀의 사랑을 쟁취해 내겠다는 에너지가 온몸에서 솟구쳐 오른다.


  하지만 난해하고 복잡하고 비밀이 가득하면서 위험천만한 그런 대상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수만 개의 '세 잎클로버' 속에서 단 하나의 '네 잎클로버'를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운이 따라 줘야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신기해하거나 의심하거나 외면하는 쪽을 택한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으로 나는 답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서 아름답게 해결하기 때문이다. 모른다는 것은 곧 공포다. 그들에게 나는 신기하고 의심스럽고 외면하고픈 공포인 것이다.


  하지만 사실 언제나 문제 속에 답이 있다. 이 간단한 명제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재능이며 신의 선물이다. 나머지는 노력과 열정 그리고 호기심만 뒷받침되면 된다.


  출제자의 의도는 문제를 통해 세상에 공개된다. 자신의 문제에 자신이 없는 출제자들 중 일부가 대충 덮어두기도 하는데 그래서 오히려 매력적으로 포장되는 경우도 있다. 막상 까보면 아무것도 없지만 그 아무것도 없다는 빈 공간을 망상과 허구로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아직 덜 완성된 그러니까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한 나무를 잘라내야만 하는 경우에는 그 가능성에 대한 아쉬움으로 문제 풀이를 멈추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만 어차피 더 익어봤자 맛이 좋으라는 보장도 없다. 기대에 기대기보다는 현실에 헌신하는 편이 편하다.


  보수를 바라지도 않는 편이다. 그저 문제를 풀었을 때의 희열이면 충분하다. 오히려 어설픈 문제를 들고 와서 풀어달라고 할 때는 내 아까운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아내고 싶을 때가 있다. 난이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눈에 빤히 보이는 수법들을 내 앞에 들이밀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에게 도움을 청해올 정도의 정성이라면 더 자세히 들여다봤어야 한다. 


  요즘 문제에는 낭만이 없다. 잔혹함과 간사함 단편적인 분노만 보일 뿐 심도 있는 계획이나 진정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한 파격적이면서 다채로운 가능성이 열린 문제는 멸종되었다. 그저 편하게 살고자 하는 썩어빠지고 나약한 정신이 세상을 지배한 탓이다.


  특히 탐욕에 휩싸여서 이성을 잃고 떠도는 문제들에서는 혐오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문제는 애초에 출제가 되지 않도록 누군가 미리 막는 것이 모두를 위한 최선책이다. 예의가 없고, 불손한 문제를 직업이라는 틀에 갇혀서 매일매일 풀어야 하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도 이제는 지쳤다. 약에 취해서 내가 창조한 상상의 공간을 떠돌며 의식을 확장하는 놀이도 지겹다. 바이올린도 영감을 주지 못한다. 감각들이 녹슬기 전에 움직여야만 한다.


  그동안 수험자 즉 문제를 푸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출제자 즉 문제는 내는 입장이 되고자 한다. 내가 내는 문제를 풀면서 모두가 배움을 갈고닦아서 한 단계 성장하고 발전하길 기대한다. 더불어 채점자 역시도 내가 맡기도 한다.


  나 셜록 홈즈는 이제 완벽한 탐정에서 이상적인 범죄자가 되려 한다.




(저 역시도 셜록 홈즈를 좋아하는 독자이기에 써 본 글입니다. 아마 현존하는 인물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상상을 하면서 말이죠. 모쪼록 팬에 입장에서 불편하셨다면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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