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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ul 15. 2023

어색해진 후배

  뭐지? 유난히 나를 잘 따르던 후배가 변했다. 얼핏 보면 예전과 별다른 것 없이 행동하는 듯 보이지만 뭔가 미묘한 어색함이 느껴진다.


  이유가 뭘까?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는 언제부터 그랬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그간의 기억들을 하나둘 들춰내 조각조각 부숴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뭉뚱그려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순간들이 있었는지 분석을 한다. 개발자의 직업병에 가까운 패턴이자 반응이다.


  “선임님. 담배 하나 피우러 가실까요?”


  “좋지. 그런데 최 주임은 어디 갔어?”


  “글쎄요. 아까 혼자 조용히 나가던데요?”


  흡연장에 도착하니 그놈은 이미 담배를 다 피우고 사무실로 돌아가려는 중이었다. 나를 두고 담배 타임을 가졌다고? 흔치 않은 일이다. 아니 처음 있는 일이다.


  어정쩡하게 나를 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라졌다. 뭐지? 하루 이틀 지지고 볶은 사이도 아닌데, 느닷없이 목례라니.




  퇴근 후 집에 와서도 고민은 이어졌다. 아내와 저녁을 먹으면서 가볍게 설명을 해줬더니, 뭐 그런 사소한 일로 신경을 쓰냐면서 핀잔을 주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쳇, 자기 일 아니라고 너무 하는 거 아냐?


  그 후로도 영 불편해서 술을 진탕 먹이고 유도신문을 시도해 봤지만, 끝까지 자기는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오리발을 내밀었다. 오히려 나보고 왜 그러냐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보기까지 하니 정말 내가 예민해진 것인지 아니면 오해를 하고 있는지 헷갈리기만 했다.




  주말 아침, 먼저 일어난 나는 옆에서 쿨쿨 자고 있는 아내를 깨우지 않기 위해 한 달 전 다녀온 신혼여행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얌전히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불현듯 떠오른 기억 하나. 같은 팀 동료들에게 몰디브에서 사가지고 온 기념품을 돌리는 와중에 최 주임을 마주하자마자 뭔가 이상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그 생표정.


  사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개발 중인 제품이 출시를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에서 설계 불량이 발견되었고, 나는 죽상이 되어있는 팀원들을 뒤로한 채 신혼여행을 떠난 것이다. 바쁜 와중에도 결혼식에 참석해 준 동료들이 고마웠지만,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황급히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듣자 하니 특히 최 주임이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뒷수습을 했다고 다들 칭찬 일색이었다.


  ‘그래 바로 그거였군. 곧 있을 집들이에 오면 작은 선물이라도 해줘서 마음을 풀어줘야겠네.’




  아내는 연신 자기가 있으면 직장 선후배들이 불편하지 않겠냐며 자리를 비워주겠다고 했지만 그건 절대 경우가 아니라며 그냥 신경 쓰지 말고 편히 있으라고 했다.


  배달음식 위주로 대부분 준비했지만, 다들 즐거운 분위기에서 술잔이 오고 갔다. 그러다 탁자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쇼핑백을 보자 녀석이 아직 오직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최 주임은 왜 안 와?”


  “글쎄요. 아까 연락했더니 몸이 좀 안 좋다면서 자기는 못 올 수도 있으니 잘 이야기해 달라고 하던데요?”


  “그래? 짜식. 웬만하면 오지. 하늘 같은 선배의 신혼 집들이에 빠진다고? 군기 좀 잡아야겠는데?”


  얼큰하게 술이 오른 나는 전화기를 찾았지만 어디에 뒀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 와중에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며 두고 간 전화기가 눈에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패턴을 풀었다. 그렇게 내 번호를 누르려던 찰나 익숙한 이름의 발신자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야! 아니다. 이제 형수님이라고 해야 하나? 선배한테 우리 예전에 사귀었던 사이라고 말 안 했지? 비밀로 하자. 알았지?”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황급히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앞에 가득 차 있던 양주를 쭉 들이켠 뒤 말했다.


  “김 주임. 이리 와봐. 그동안 고생했어. 이거 받아. 내가 너 주려고 특별히 명품 카드 지갑 하나 샀다니까. 어때 고맙지? 충성심이 막 샘솟지?”



  내일부턴 내가 녀석 서먹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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