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호 Dec 14. 2023

형벌

 살인을 저지르고 30년 형을 받은 나인데 다시 살인을 하면 기간을 줄여주겠다고? 그것도 공식적으로? 감옥에 들어온 지 어느새 10년, 그동안 억눌러왔던 본성이 꿈틀거린다. 더 이상 누군가를 죽일 수 없게 되자 심지어 나 자신을 죽이는 꿈까지 꿨었다.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정신을 지배하려는 욕구와 '목숨'을 건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일주일 내로 답을 달라고 한다.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나에게 알려준 것은 비정기적인 살인 요구에 무조건 응해야 하며 매번 1년씩 형을 줄여준다는 조건이었다.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바로 승낙하지는 않았다. 거래를 하기 전 더 얻어낼 것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어차피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는 분위기니까.




 "방법은 내가 정하게 해 주십시오."

 

 일주일을 꽉 채우고 만났을 때 단호하게 요구했다. 살인은 어떤 식으로 목숨을 빼앗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순식간에 맛과 향이 사라지는 인스턴트 음식보다 은은하고 깊은 맛을 내는 제대로 된 음식을 나는 선호한다. 그래야 기억에 오래 남고 또 먹고 싶어 진다. 쉽게 휘발되는 단발성 쾌락보다 뇌리에 깊게 새겨지는 추억이 진짜다. 이런 걸 낭만이라고 부르던가?


 "좋아. 대신 네 손이 직접 대상에게 닿지 않아야 해."


 아쉬웠지만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다.


 "한 가지만 더. 감형 조건은 조정을 좀 했으면 합니다."


 "1년 이상은 힘들어."


 "아뇨. 그게 아니라."


 내 말을 듣자마자 담당관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 당황이라기 보단 징그러운 벌레를 봤을 때의 표정에 가까웠다. 솔직히 밖에서 살인을 하는 것은 힘들다. 너무 많은 변수와 너무 큰 리스크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안에서 꾸준히 내 욕망을 해소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스릴이 다소 부족할 수도 있지만 그건 부수적인 즐거움이지 본질이 되지는 못한다.


 짜릿했다. 온몸의 세포가 미친 듯이 반응했다. 전율. 전기의자에 앉은 녀석이 느끼고 있을 그 정도의 전류가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심장이 멈추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버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손끝에서 전해오는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을 조금이라도 더 각인하고 싶었다.




 "전에 말씀드린 것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감형은 필요 없고 대신 네가 죽일 사형수와 사전에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할 시간을 마련해 달라는 거?"


 "네."


 "그래. 그러자고."


 얼마나 나쁜 놈인지 궁금했다. 어떤 사연이 있는 지도 알고 싶었다. 곧 살인당할 것을 알고 있는 자들의 심리를 기록해 두고 싶었다. 잠깐 내가 변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한 달에 두세 번 꼴로 나는 계속 불려 갔다. 사형 제도 자체가 계속 유지되려면 누군가는 실행에 옮겨야 한다. 아무리 직업이라고 한들 그리고 아무리 극악한 범죄자라고 한들 생면부지의 사람의 목숨을 끊는 것은 그들에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리라. 어떤 변명을 가져다 붙이든 살인은 살인이니까. 그래서 내가 필요한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 법이니까.


 즐거웠다. 교도관이 다가와 내 이름(번호가 아니라)을 부르자 이번에는 또 어떤 지독한 녀석일지 궁금증이 고개를 들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독방 문 앞에서 호흡을 잠시 가다듬었다.




 "시간을 더 주실 수 있나요?"


 "그럴 줄 알았지. 왜? 못하겠어? 알다시피 날짜는 이미 정해져 있어. 그리고 처음에 확실하게 이야기했지? 중간에 거부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네 역할을 대신할 놈은 이미 찾아놨으니까 알아서 해."


 쉽게 결정 내릴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 상대를 마주하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녀석도 나를 보고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교도관이 뒤에 서 있지 않았다면 바로 도망가려 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그럴 줄 알았다고?


 아들. 내가 그를 아들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을까? 20년 만에 만났지만 우리는 단번에 서로를 알아봤다. 침착한 척 이것저것 물어보려 했으나 떨리는 목소리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음을 아들의 눈빛에서 전부 읽어낼 수 있었다. 아들은 끝내 아무 대답도 하지 않다가 방에서 나가는 내 등뒤에 딱 한마디를 박아 넣었다. 개새끼.


 어차피 녀석은 그날 죽게 된다. 다만 누구 손에 의해 생을 마감하게 될지만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빨리 결정하라는 담당관의 눈을 노려봤지만 그는 미소를 풀지 않았다.


 나는 긴 한숨을 쉬고 내 앞에 놓인 종이에 이름을 적고 사인을 했다.


 "혹시 고통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꼭 좀 알려주시죠.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날씨’가 사라진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