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rtphone

스마트 소설 #47

by 김재호

패기, 열정, 젊음, 용기 그런 것들이 나를 지배하던 시절.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고, 누구와 견주어도 앞서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서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부유한 부모, 해외 명문대 졸업, 박사 학위, 공기업 입사, 사랑스러운 애인,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운동 신경, 유머감각에 노래에도 소질을 보이는 나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진, 내가 가진 것들로 세운 장엄하고 화려한 성은 영원히 내 발아래 서 있을 줄로만 믿었다.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사소한 사고들이 전조증상처럼 발생한다고들 한다.

일종의 경고일 수도 있고, 신의 계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상적인 평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벌어지는 일들을 애써 무시하고 잊어버리려는 습성이 있다.


나 역시 설마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비 오는 아침 우산을 가지고 나갔다가 어딘가에 흘리고 돌아온 일,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려놓고는 텔레비전에 정신을 빼앗겨서 화재로 이어질 뻔한 일, 여자 친구와의 기념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른 약속을 잡은 일. 그저 살다 보면 누구나 겪을만한 실수로 치부해 버렸다.


그리고 바로 그날이 왔다. 휴대전화가 사라진 날.

누가 훔쳐간 것인지 아니면 어디에 흘리고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명백한 사실은 내 손에 휴대전화가 없다는 것. 하루 동안의 행적을 머릿속에 차례대로 떠올려본다. 언제 마지막으로 휴대전화를 사용했을까? 통화, 메시지와 이메일 수발신, 시간 확인, 결제, 송금, 주식 거래, 업무 자료 공유, SNS , 동영상 시청 등. 우리는 항상 함께했었는데 오늘은 도대체 마주한 기억이 없다.


동료의 휴대전화로 통화를 시도했다.

누군가가 갖고 있다면 전화를 받을 것이고, 그러면 다시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신호음을 들으며 사례금은 얼마나 줘야 좋을지 고민한다. 사람의 목소리 대신 음성 사서함 안내 메시지로 넘어가자 안도와 불안이 동시에 고개를 든다.


자가용, 화장실, 탕비실, 회의실, 엘리베이터, 회사 내에 설치된 습득물 보관함, 구내식당, 흡연장, 휴게실, 청소를 담당하시는 아주머니, 경비 아저씨 등등 꼼꼼하게 살피고 묻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별 소득이 없이 시간만 훌쩍 흘렀다. 자리로 돌아와 휴대전화 분실 시 대처 방법을 검색해 본다. 잠금 패턴을 조금 쉽게 설정해 놓은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큰일이야 있겠냐 싶다.


잔고가 ‘0’이다.

모든 신용 카드가 한도까지 사용되었다.

주식 계좌와 마이너스 통장도 남김없이 털렸다.

꼭꼭 숨겨두었던 저속한 사진과 영상들이 내 SNS 계정에 전부 게시되었다.

애인 몰래 썸을 타던 직원과의 대화 내용은 Capture 되어 블로그에 올라왔다.

업무 상 극비에 해당하는 자료들이 이메일을 타고 해외로 유포되었다.

전화기에 저장되었던 지인들의 전화번호와 개인정보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뿌려졌다.

부모님과 지인들 몇몇은 나를 사칭한 보이스 피싱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내 여권,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사진을 도용한 사기 사건들이 발생했다.


당장 확인한 것이 이 정도다. 내가 쌓아 올린 견고했던 성이 처절하게 끝도 없이 무너지고 있다. 고작 손바닥만 전자기기 때문에 내 삶이 송두리째 가라앉고 있다. 어지러웠던 머리가 차갑게 식자 한 장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출근길에 차를 주차하고 내리다가 커피를 깜빡해서 손에 있던 휴대전화를 차 위에 잠시 올려두었다. 그리고 가방과 커피만 챙겨 든 채 회사 건물로 들어오는 내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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