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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y 21. 2024

시간의 시간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귀한 걸음 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더불어 지금껏 받아보신 적도 목도하신 적도 없는 크나큰 복이 지금 한 발짝씩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상기시켜드리고자 합니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십시오. 다들 선택받은 분들이자, 그간 여러분을 가두고 있던 껍질을 깨고 한날한시에 새롭게 태어날 형제자매나 다름없는 사이입니다.


 서두는 간략하게 마치고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살면서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절실하게 갈구하고 바라지만 결코 얻을 수 없는 바로 그것 말입니다.


 돈? 사랑? 직장? 집? 명예?


 그런 천편일률적이고 구태의연하며 물질과 속세에서 파생된 소수의 전유물 말고 진지하게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어렵나요? 그럴 만도 합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여타 종교들이 주장하는 교리나 약속을 훑어보면 대부분 이렇습니다. 사후 세계의 안녕과 평화, 깨달음을 통한 열반, 원죄에 대한 구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길잡이, 무병장수나 세계평화도 있더군요. 그런데 과연 그런 이야기들이 진정 여러분의 부족한 부분을 넉넉하게 채워주던가요? 우리는 항상 부족하고 모자란 존재일 뿐이고 그들의 뜻을 거역하면 그 마저도 보장받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자! 저는 이 자리에 모이신 낙오되고 버림받았던 분들께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장담합니다. 당신도 저처럼 아니 저를 뛰어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꿈도 꾸지 못할 업적들을 수없이 이뤘습니다. 과연 그 진실이란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제 삶을 송두리째 바꾼 비결을 공유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 좋은 비밀을 왜 밝히려 하느냐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겠군요. 그건 바로 나누고 나눠도 결코 마르지 않는 고결하고 신비로운 우물이기에 얼마든지 알려드릴 수 있는 겁니다. 다만 오직 이 자리에 지금 이 시간에 저희가 초대한 여러분만이 들을 자격이 있을 뿐입니다.


 준비되셨나요? 위대한 삶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을 각오가 되셨나요? 무섭고 두렵다면 옆에 계신 분들과 손을 맞잡고 가슴을 당당히 펴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제 가볼까요?


 제가 오늘 이 엄숙하고 진중한 자리를 마련하여 여러분 앞에 선 이유는 바로 '시간'입니다.


 여러분! 하루는 몇 시간입니까?


 맞습니다. 24시간이죠.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그 24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계신가요? 24시간이 충분하던가요? 아니죠? 공부할 시간, 돈 벌 시간, 가족과 함께 할 시간, 즐길 시간, 잠잘 시간 등등 아무리 쪼개도 시간은 부족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쉿!


 저는 하루에 26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뭐 효율적으로 쓰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자기 개발서에서 하는 그런 허튼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일반적인 사람보다 2시간을 더 부여받았습니다. 그게 바로 제 성공의 밑바탕에 있는 숨겨진 능력이자 재능이자 축복입니다.


 어떠신가요?


 그렇죠? 저도 그랬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죠. 헛소리도 무슨 그런 헛소리가 있냐며 실컷 비웃어 주었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위반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그런 허구가 진짜 가능하다니 당연한 반응입니다.


 앞으로도 쭉 못 믿을 것 같다고 여겨지시는 분은 지금 당장 자리를 뜨셔도 됩니다. 시간 낭비할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대신 그간의 일상으로 돌아가 버거운 하루하루를 살다가, 텔레비전을 통해 성공가도를 달리는 지금 옆자리에 앉아있는 분을 보며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겁니다. 기회는 왔을 때 잡는 겁니다.


 다들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들어보셨죠? 회화, 건축, 과학, 의학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엄청난 역량을 발휘했다고 하던데 그 양반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셰익스피어'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걸작을 남겼는지 아시죠? 고작 하루 24시간을 가진 평범한 인간에게 가능한 결실이었을까요?


  입장할 때 나눠드린 경전의 첫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우주 깊은 곳에 묻혀있던 시간을 저희가 모시는 신께서 채굴을 하게 되면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이 생겼습니다. 자비로운 그분께서 처음에는 골고루 시간을 나눠주셨지만, 그분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선물을 주시기로 합니다. 그 영광을 입은 신도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적인 사업가, 권력자, 예술가, 학자가 되어 곳곳에서 활동 중입니다.


 궁금하시죠? 어떻게 하면 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 이제 저희가 나눠드리는 팸플릿을 참고하시며 제 말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하루 10분이 필요하시면 100만 원,  하루 1시간이 필요하시면 1억, 저처럼 2시간이 필요하시면 100억을 신께 바치고 이 시계를 받으시면 됩니다. 항상 차고 다니실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정기적으로 기도를 드리는 자리에 오실 때는 시계가 입장권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니 가지고 오셔야겠죠.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을 아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일반적인 시계와 똑같이 시간이 가는 것 같지만 여러분은 그 안에서 확장되어 느리게 가는 시간을 살게 됩니다. 그러니 시간 약속을 어기는 일도 없고, 오해나 불편한 일이 벌어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혼자만 느리게 가는 시간을 적절하게 활용하기만 하면 됩니다. 처음에는 잘 인지가 되지 않거나,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곧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적응되실 테니까요.


 오늘 1000분이 자리를 채워주셨는데 각 사양별로 오직 200개, 총 600개의 시계만 준비되어 있습니다. 서두르시는 것이 좋겠네요. 더불어 향후 추가 구매 시 할인의 기회도 주어진다는 점 잊지 마시고요.


 시간의 값어치는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체력은 한계가 있고 재능은 부족하고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도 없으며 그 와중에 다른 신은 그저 신의 뜻이라며 그저 받아들이라고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끼리만 하루에 30시간을 쓴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하늘 아래 뭐가 불가능하겠습니까? 시간은 지금이 최저가입니다. 이 신전을 그냥 나가셨다가 내일 억만금을 싸갖고 오셔서 아무리 빌어봤자 아무런 소용없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최고급 사양은 벌써 절반이 나갔고, 나머지 사양도 계속 수량이 줄어들고 있네요. 일시불이나 현금으로 하시면 특별히 5% 캐시백도 됩니다. 아! A/S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멈추는 그때까지 영원히 책임질 것이며 직계가족 양도도 일정 금액을 지불하시면 가능합니다.


 다만 오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시계를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허락해 주신 신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추가 시간이라는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디 가셔서 소문을 내시는 분들은 영구적으로 신도 명부에서 박탈당하니 절대 잊지 마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는 시간의 시간입니다.

 

 신께서 시간 채굴을 멈추는 그날. 심판의 날이 올 것이며 여러분은 그분 옆에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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