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나의 외침에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은 아연실색했다. 나와 같은 유부남들은 징그러운 벌레를 보듯 했고, 노총각 아니 결혼을 아예 포기한 녀석들마저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너 지금 이러는 거 정상 아니야. 정신 차려. 응?”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친구가 안쓰럽다는 눈으로 빈 소주잔을 가득 채워주며 말했다. 안주도 없이 연거푸 소주를 들이부었음에도 취기는 전혀 오르지 않았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진심이다. 소싯적에는 남자가 제법 따랐다곤 하나 이제는 얼굴에 구석구석 주름이 생기고 애를 둘이나 낳으면서 탄력을 잃은 몸매의 아줌마에게 왜 느닷없이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일까? 취미나 취향도 완전히 다르고 툭하면 까칠하게 구는 그녀를 보며 몇 달 전부터 두근거리기 시작한 이유를 나조차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너 얼마 전에 넘어져서 머리 세게 부딪혔다더니 그 후유증 아니냐?”
분위기 파악을 전혀 하지 못하고 실없는 농담을 꺼낸 녀석을 노려보다 그냥 한숨을 내 쉬었다. 연애세포는 이미 다 죽어서 화석으로 남은 줄 알았는데 ‘쥬라기 공원’의 공룡처럼 복제라도 되었단 말인가?
“나 안 되겠어. 지금도 그녀가 너무 보고 싶어서 못 참겠어. 감정이 통제가 되질 않아.”
나를 마주한 얼굴들에서 두려움마저 언뜻언뜻 보인다. 두 녀석은 벌써 자리를 뜰 생각인지 핸드폰을 보며 티 나게 핑곗거리를 찾고 있다.
“그저께는 꽃이랑 야한 속옷을 선물했다가 핀잔만 먹었잖아. 나이 값 좀 하라고. 어찌나 민망하던지.”
“그래도 그렇게 좋아?”
“응. 그런데 내 마음을 안 받아주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것 봐, 내가 몇 번이나 계속 연락했는데 답장이 하나도 없어.”
시무룩하다 못해 나라 잃은 표정의 나한테 완전히 질렸는지 갑자기 야구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었다. 야구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였지만 얼마 전에 사회인 야구도 접고 경기 시청도 그만두었다. 그녀를 볼 시간도 모자란데 한낱 공놀이라니.
카톡.
그때 휴대전화에서 알림이 울렸고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사색이 되어 의자가 뒤로 넘어지는지도 모르고 벌떡 일어섰다.
“헉! 나 어쩌지?”
덩달아 놀란 친구들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왜? 무슨 일 있어?”
내 입을 뚫어져라 보는 눈들을 향해 짧게 대답하며 황급히 짐을 챙겨 뛰쳐나갔다.
“오늘 결혼기념일인데 깜빡했어!!”
등 뒤로 욕이 뒤따라오는 것을 무시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저 새끼. 진짜 미쳤네. 결혼 15년 차에 와이프한테 다시 사랑에 빠졌다고 하더니 정작 결혼기념일에 술이나 퍼 먹고. 야! 이제 저 새끼 부르지 마. 분위기만 다 망치고. 뭐?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라고? 누가 마누라하고 사랑에 빠지냐?! 천륜을 어긴 돌아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