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지어사

제2장. 싱크홀 #1

by 김재호

2025년. 현재. 제주도.

동백이 지는 계절도, 태풍이 몰아칠 철도 아닌, 사람과 바다가 서로의 온도를 나눠 갖는 평온한 날씨. 지금 이 섬은, 아무 일도 없을 것처럼 평화롭다. 반짝반짝 빛나는 백사장과 맞닿아 있는 에메랄드빛 바다에는 휴가를 즐기러 온 연인과 가족들이 물놀이에 한창이다. 미세한 모래 알갱이들이 햇살을 쪼개 유리 부스러기처럼 반짝인다. 튜브에 몸을 싣고 허리를 젖히는 아이들의 웃음이 바람을 타고 통통 튄다. 선크림과 짠내, 젖은 타월에서 풍기는 햇살의 냄새가 뒤섞여 피부에 눌어붙는다. 파도는 허리춤을 간질이듯 다녀가고, 사람들은 서로를 밀치며 깔깔댄다. 사진을 찍는 손끝이 바다의 눈부심을 몇 장의 추억에 가둔다. 수평선 너머에서 굉음과 함께 뽀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오던 보트 한 척이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더니 또다시 시야에서 사라진다.


해수욕장을 조금 벗어나 사람의 인적이 드문 곳에는 화산 폭발로 생긴 검은 바위 사이로 듬성듬성 솟아난 초록의 풀들이 바람의 경로에 맞추어 누웠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고 있다. 현무암의 검정은 태고의 열을 품은 색이다. 표면의 기포 자국들은 돌 속에 갇힌 옛 불길의 숨구멍. 그 사이로 난 초록은 여린데 강인하다. 바람이 이 섬의 오래된 호흡을 따라 불면, 풀들은 하나의 의식처럼 동시에 숙이고 다시 선다. 드문 발자국들만이 이곳이 사람의 시간에 닿아 있음을 증명한다.


멀찍이 보이는 해녀들은 물질 후 바위 위로 올라와 하나둘 자리를 잡고 모여들고 있었다. 검은 잠수복 위에 얹힌 햇빛이 진주처럼 영롱하게 반짝인다. 숨비소리가 잦아들자, 숨 대신 말이 이어진다. 손가락마다 염분이 말라 단단해졌고, 단단한 어깨엔 수십 년 바다가 내려앉아 있다. 그들의 대화는 크지 않지만, 바람과 파도 사이로 오래 멀리 간다.


이 모든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에서 비켜간 또 다른 세상 같다. 관광지의 요란한 색과 소음이 이 지점에서 문득 멎는다. 일상을 벗어난 어지러움과 다르게, 완성에 가까운 하루는 단정하다. 파도는 파도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각자의 리듬을 갖고 돌아간다. 시간의 박자에 맞춰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닮아가는 중이다.


계속해서 이어질 것 같은 한 폭의 그림이 커다란 소음과 함께 찢어진다. 한 장의 풍경화 중앙을 칼이 내리그은 것처럼, 나풀거리던 천이 좌우로 갈라지며 찢어진다. 파도와 아이들 웃음, 해녀들의 말소리 위에 중첩되는 거대한 대지의 울림.

우르릉 우구구궁!

공기가 순식간에 공포의 색으로 변한다. 소리는 벼락같지만 번개가 없고, 파도 같지만 바람이 없다. 사람들의 귀 안쪽이 저리며, 복숭아뼈가 떨린다. 바다새 떼가 하늘로 흩어지고, 평온의 입자들이 순식간에 도망친다.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파열음에 뒤이어 자동차들의 급정거 소리가 날카롭게 따라온다. 타이어가 아스팔트 위에서 비명을 지른다. 고무 탄내가 콧속을 비집고 들어오고, 스키드 마크는 도로 위에 검은 상흔을 남긴다. 운전자들의 손가락이 핸들을 더 꽉 쥐고, 흰 팔등 위에 핏줄이 솟구친다. 클랙슨이 뒤늦게 합창한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경고 그리고 공포.

쾅! 쿵! 쾅! 쾅!

철과 유리, 인간의 부주의와 놀람이 연쇄적으로 충돌하는 소리. 각 소리는 제 무게와 속도를 갖고 이어지며, 이름 없는 사물들이 서로의 거리를 무시한다. 순식간에 공기 자체가 무겁게 눌린다. 상상은 사건의 윤곽을 이미 다 그려 놓았고, 사람들만 그림 속으로 뒤늦게 들어간다.


왕복 4차선은 말 그대로 난장판 위에 펼쳐진 쑥대밭이었다.

차선은 방향을 잃은 점들이 되었고, 안전표지들은 쓰러진 장난감처럼 굴러다닌다. 떨어져 나가 바닥에서 흔들리는 사이드미러 안에 파란 하늘이 비친다. 그 하늘마저도 일그러지고 수많은 파편을 이루며 생경하다. 검은 아스팔트 위 여기저기 방향을 잃은 피 줄기가 틈새를 찾아 메우며 어지럽게 흘러갔다. 붉은 선들이 틈을 찾아 스며든다. 열을 잃어가며, 그러나 선명하게 남는다. 누군가의 이름도, 나이도, 계획도 이제 이 선 위에 엎질러져 있다.


찢어지고 부러지고 잘린 사람들은 대부분 의식이 없었다.

신음은 고통에 반비례하며 부조화를 이루다 속절없이 끊어진다. 일부는 꿈속으로 밀려들어가고, 일부는 현실에 발붙인 채 울음을 삼킨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동공은 초점을 잃었다 되찾는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을 태운 버스에는 불이 붙어 검은 연기가 솟고 있다. 검은 연기는 하늘을 칠하는 먹물 같고, 타는 고무와 천의 냄새가 목을 긁는다. 창틀의 고무가 눌어붙어 유리의 가장자리를 하얗게 태운다. 차창에 반사된 불빛은 깜빡이는 신호처럼 버스 내부를 물들인다. 몸이 끼어 움직이지 못하거나 무서움에 떨거나 기절한 상태의 아이들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작은 손들이 손잡이를 더듬고, 발끝이 허공을 구른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제 목소리인지, 친구의 목소리인지 분간이 어렵다. 의식을 있는 몇몇 아이들이 비명을 지른다. 고음의 비명은 연기보다 빠르다.

“아악! 엄마! 엉엉. 살려주세요!”

‘엄마’라는 단어가 화재경보기처럼 공간 전체를 울린다.

“아파. 너무 아파!”

밀려오는 고통은 설명 대신 반복을 택한다. 말끝이 떨리고, 공기가 비명을 붙잡지 못한 채 미끄러진다.


뒤따르던 차들에서 사람들이 황급히 내린다.

문이 일제히 열리고, 발자국 소리가 불길과 연기 사이로 흩어진다.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이고, 어떤 이는 눈을 크게 뜨고, 제 각각 마주한 현실을 파악한다. 119에 전화를 거는 사람도 보인다. 떨리는 엄지손가락이 화면을 두드린다. “지금, 여기, 빨리” 세 단어가 서로를 밀치며 입 밖으로 튄다. 그 와중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도 있다. 화면 속 불길은 미학이 되고, 사건의 참혹함은 조회 수가 된다. 렌즈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중립의 온도로 재앙을 기록한다.

“버스. 버스에 탄 아이들부터 꺼내야겠어요!”

목소리는 결심과 공포의 중간을 맴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지점으로 모이며 행동을 이끈다.

“네. 누구 차에 소화기 없어요?”

“제가 가져올게요.”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 사이로 스마트폰을 들고 돌아다니는 사내가 자꾸 거치적거리자 짜증이 난 중년의 남자가 소리를 지른다. 선의와 분노가 서로의 팔을 잡아끄는 순간. 구조의 동선 속에 침입한 렌즈 하나가, 사람의 신경을 끝까지 당긴다.

“어이. 거기! 그만 찍고 좀 도와주지?”

“내가 왜요? 위험하게. 아저씨 하던 일이나 하세요. 나 신경 쓰지 말고.”

“이…….” 욕설은 끝까지 나오지 못했다. 대신 어금니 사이로 쓴맛이 번진다. 사고 차량 중 하나인 커다란 트럭에서 떨어지며 터진 봉투에서 회색의 가루들이 바람에 날린다. 시멘트가 짙은 안개처럼 흩날린다. 입안이 바짝 말라붙고, 호흡이 둔탁해진다. 회색의 모호함이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삶과 죽음을 분절하지 못하게 경계를 허문다. 죽어가는 사람들과 구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그저 구경꾼이 된 사람들이 만들어낸 광경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경치와 어울려 마치 휴머니즘을 다룬 한 편의 영화 촬영장처럼 보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만들어낸 선과 악, 무관심과 용기들이 같은 프레임에서 휘몰아친다. 저 멀리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가까이의 공기는 여전히 뜨겁다.


드디어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바닷가에서 들리는 Siren 소리는 심각한 위험을 뜻한다. 바다 위 선원들이 그랬듯 그 소리에 홀려 꿈을 꾸는 듯하다. 사이렌은 바람의 골을 타고 길게 휘어진다. 누구는 그 소리에 안도하고, 누구는 더 두려워한다. 이 소리는 ‘사고’의 그림자이자 ‘희망’의 확증이다.


친구관계로 보이는 두 젊은 남성이 흥분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외친다. 운동화 끈은 느슨하지만, 말은 빠르다. 흥분은 판단을 앞질러 혀끝을 밀어젖힌다.

“저 구멍은 뭐지? 아무래도 저 구멍 때문에 사고 난 거 같은데?”

도로의 수평을 잃게 만든, 검은 원.

“그러게 저것도 찍자. 경찰이랑 소방관들 오면 못 찍게 할 거야. 빨리 가보자.”

‘기록’이 항상 먼저다. 발소리가 아스팔트의 미세한 요철을 긁고 간다.


참혹한 사고 현장 가운데 커다랗게 뚫려 있는 검은 구멍. 원의 가장자리는 살아 있는 것처럼 삭아 내리고, 내부는 빛을 삼킨다. 색은 검지만, 질감은 움직이는 어둠이다. 아마도 그 구멍을 피하려 급히 방향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유는 충분히 그럴듯하고, 너무 늦었다. 이유는 매번 결과 뒤에 온다.

구멍은 제법 크다. 약 7 내지 8미터 정도 지름의 구멍은 깊이 또한 상당해서 웬만한 사람은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기 힘들어 보일 정도다. 바람이 아래로 빨려 들어가며 앓는 소리를 낸다. 엷은 석유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멀어진다. 처음 들렸던 묵직한 울림의 원인이 그 구멍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야. 저 밑에 뭐 있는 거 같지 않냐?”

“글쎄. 깊어서 잘 안 보여.”

빛은 상처의 바닥까지 닿지 못한다. 어둠은 깊이를 숨기고, 깊이는 사람을 유혹한다.

“저기. 저기 봐봐. 저거 안 보여? 커다란 거 조금씩 움직이잖아.”

시선이 흔들리고, 숨이 높아진다. 어둠이 어둠을 밀어내 듯, 무언가의 윤곽이 유리처럼 깜박인다.

“어? 맞아. 저게 뭐지?”

둘 중 하나가 핸드폰을 들이대며 가까이 다가가 소리를 지르자 구멍 주위에 불안하게 버티고 있던 아스팔트가 밑으로 주저앉는다.

“어어어. 으악.”

“으악. 조심해.”

경고는 또 한 박자 늦다. 손끝은 허공을 움켜쥐고, 발끝은 이미 ‘바닥’이라는 개념을 잃었다. 피할 틈도 없이 두 명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중력은 간단하고 잔혹하다. 몸과 휴대폰, 욕설과 놀람이 같은 속도로 가라앉는다. 바람은 아래로 흐르고, 빛은 위로 멀어진다. 손에서 떨어진 휴대전화만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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